‘일하는 목사님’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성도 수는 점점 감소하는데 신학교 졸업생들과 교회 수는 줄지 않는다. 미자립교회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은 점점 더 많은 전도사와 강도사, 목사들을 생활 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목회자의 이중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2회에 걸쳐 짚어본다.
◇나는 투잡(two job) 목사다=올해 불혹을 맞은 김희태(가명) 목사는 주중에 영업용 택시를 운전한다. 격주로 낮과 밤을 바꿔가며 하루에 8∼10시간씩 주 5일 근무한다. 벌써 2년째다. 사납금을 채우고 나면 월 120만∼150만원을 받는다. 그가 ‘택시 모는 목사’라는 건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김 목사의 소속 교단은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진 서울 무지개교회 목사는 3년차 퀵서비스 기사이기도 하다. 평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일한다. 지난해에는 골목에서 갑자기 나온 차를 피하려다가 넘어져 쇄골과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60대 중반의 이상호(가명) 목사는 아파트 야간경비만 10년째 서고 있다. 내려앉는 눈꺼풀을 치켜세우며 한밤 중 순찰을 돌면서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이들 모두 평일에는 일하고 주일에는 설교하며 목회를 병행하고 있는 ‘투잡’ 목사들이다.
투잡 목회자들의 일상은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초 한 목사가 개설한 인터넷 사이트 ‘일하는 목회자들(workingpastors.com)'. 홈페이지를 만든 박종현 목사는 야간도로보수공사를 했던 경험을 소개한다. 저녁 6시 혹은 8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도로 보수 작업 때 도로 밖으로 튀어나온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을 빗자루로 쓸어 넣는 일이다.
박 목사는 “우리는 그저 스스로를,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 할 뿐이다. 아니 실은 목회를 하기 위해 생존하려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이 사이트에는 투잡 목회자들의 이야기와 일자리 소개, 직업 경험담 등이 올라와 있다.
◇내가 이중직을 선택한 이유=김 목사와 이 목사가 목회를 하면서 주중에 택시를 운전하고 야간경비를 서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김 목사는 서울에 교회를 개척한지 3년이 다 돼가지만 성도 수 10명을 넘어 본 적이 없다. 헌금은 교회건물의 월세를 내기에도 부족하다. 아내와 초등학생 두 아들의 생계와 양육을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목회자로서 소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고 비록 적은 수이지만 제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는 성도들이 있으니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김 목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가 택시 승객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이 목사는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수천만원의 손해를 봤다. 그동안 아내가 생활비를 벌어 교회 사역에만 전념했지만 빚을 갚기 위해 생활 전선에 나서야 했다. 자녀들도 대학에 입학해 등록금이 더 필요했다. 그는 빚을 모두 갚았지만 계속 경비로 일한다. 이 목사가 번 돈의 절반 이상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쌀과 의류 지원, 그들의 자녀를 위한 장학금 등으로 쓰인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이중직을 가져야 하는 목회자들 한편으로는 사역을 목적으로 한 투잡 목사도 있다. 퀵서비스 기사인 박 목사는 평소 꿈꿔오던 자비량 목회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 교회 정관에도 ‘자비량으로 목회를 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회자들도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목사는 “목회자의 사례비 문제 등으로 교회 내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면서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려면 목사와 성도 모두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중직을 許하라’…고민 깊어지는 교계=‘이중직을 허용해야 한다’는 현장 목회자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중직에 대해 여전히 ‘불허’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당수 교단들도 고민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기독신문이 국내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소속 목회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57.2%가 이중직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반대는 38.8%였다. 앞서 2014년 목회사회학연구소가 초교파 목회자 9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응답자 중 73.9%가 ‘경제적 이유로 인한 목회자 이중직’에 대해 찬성했다. 지난해 말 국민일보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55%는 ‘이중직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답했다.
목회자들이 소속된 주요 교단들의 입장은 어떨까. 본보가 장로교·감리교·성결교 등 국내 11개 주요 교단들의 목회자 이중직 허용 여부를 파악한 결과, 이중직을 허용하고 있는 교단은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등 3곳으로 조사됐다(표 참조). 》26면에 계속
이사야 김아영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기감의 경우 지난 1월 열린 입법 임시총회에서 예산이 3500만원 이하인 미자립교회의 목회자가 해당 연회로부터 직종과 근무지, 근무시간 등을 서면으로 작성한 뒤 신청하면 별도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70%가 넘는 교단이 여전히 목회자 이중직의 허용을 꺼리고 있다. 이에 대해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김진호 총무는 “이중직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목회 이외의 일에 뛰어들면서 목회에 대한 목회자들의 헌신도와 전문성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자칫 성도들과 교회 전반에 대한 관심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목회자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서 “생계 극복 차원을 넘어 선교적 차원에서 이중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교계에도 이중직 허용이 점차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사야 김아영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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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이중직, 지금 교회는] 배달·경비원·택시운전… ‘투잡’에 고달픈 목사님
입력 2016-08-17 21:10 수정 2016-08-23 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