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총선 넉 달, ‘문’이 안 보인다

입력 2016-08-18 04:00

16년 만의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를 만든 4·13총선 후 넉 달, 더불어민주당에 문재인 전 대표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 네팔에서 들고 돌아온 ‘국민행복론’ 구상은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및 영남권 신공항 등 현안에도 목소리를 냈지만 효과는 미흡했다. 당대표 경선에선 노골적으로 ‘반(反)문’을 내세운 후보가 선전하고 있고 야권 내 경쟁 후보의 존재감도 확대되고 있다.

총선 이후 문 전 대표는 “당분간 중앙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야권 유력 대권 주자인 그가 경색 일변도인 여야 대치 상황에서 언제 숨고르기를 끝낼지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6월 미래구상을 위해 네팔로 떠나 히말라야 트레킹에 올랐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 소설가 박범신씨 등이 동행한 뒤 귀국해 내놓은 비전은 국민행복론이었다. 하지만 사드 배치 문제로 나라가 격렬하게 대립하던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을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나흘 뒤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드 배치 반대 의사를 밝혔다. 본말전도, 일방결정, 졸속처리를 정부의 3대 잘못으로 꼽은 뒤 한·미 정부 간 합의로 처리하려 할 경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는 단호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비롯한 원내 지도부의 호응은 없었다.

더민주는 이후 당론 없이 국민의당, 정의당과 함께 국회 내 사드 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합의하며 공을 야권 전체로 넘겼다. 네팔행에 앞서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였던 부산 가덕도를 방문해 힘을 실어줬지만 이 역시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지으면서 절반의 성공만 거뒀다.

8·27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당대표 선거전에서는 비주류 이종걸 의원이 예상 밖 호조를 기록 중이다. 그는 합동연설마다 반문 정서를 드러내며 비주류 결집을 호소했다. 그 결과 마감시간 직전 후보등록을 한 ‘지각 출발’에도 불구하고 범주류 송영길 의원을 제치고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했다. 이 의원의 출마에 반대했던 현역 의원들마저 현재는 그를 도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당내 잠재 후보군을 잇따라 만나며 ‘대선 플랫폼’ 건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이어 지난 15일에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불러 영화 ‘덕혜옹주’를 함께 관람했다. 이 시장은 모처럼 언론의 ‘카메라 플래시 샤워’를 받으며 “내년 대선 상황에서 필요하다면 역할을 할 것”이라며 출마 가능성도 시사했다. 광주에선 손학규 전 고문을 만나는 등 김종인발 정계개편 시동을 거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문 전 대표가 대선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민주 한 중진 의원은 “문 전 대표도 총선 직후 재정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전제한 뒤 “과거 상도동·동교동계와 달리 친문, 친노(노무현) 등 친소관계로 정리되는 그룹은 탄탄하지 않다. 주류, 비주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사드 문제는 중요한 국정 현안이기 때문에 개인적 의견을 언급했을 뿐 어떤 정치적 작위나 의도는 없었다”며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