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5살 형진(가명)이는 일주일 간 7명의 학습지 선생님과 마주한다. 한글과 수학, 영어, 모형놀이 등을 매일 2∼3가지씩 배운다. 이런 일상은 엄마의 배려에서 비롯됐다. 형진이 엄마는 “방문 교사들에게 엄마가 바쁘니 대신 놀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형진이는 점차 소극적인 아이로 변했다. 말이 부쩍 줄더니 어느새 귀를 닫고 소통을 하지 않으려 한다.
유아를 둔 부모들은 혼란스럽다.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을 꿈꾸고 계획하지만, 고민은 이어진다. 아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학습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전업주부인 김인숙(가명·34세) 씨는 “흥미를 알아가는 이 시기야 말로 다양한 직·간접 교육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유아 학습의 경우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를 부모가 판단해 시작하는 사례가 많다. 직장인 채은하(가명·32세) 씨는 “영어와 발레 등을 신청했는데, 모두 아이가 좋아서 하는 프로그램이다”라고 강조했다. 아이가 좋아하면 쉽게 지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었다. ‘학습’보다 ‘놀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들은 대개 재미와 학습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모들의 이 같은 ‘착각’을 우려했다. 심성경 원광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유아들은 칭찬을 받을수록 엄마가 원하는 방향에 자신을 맞추고 그걸 좋아하는 것처럼 표현하게 된다”며 “부모는 아이가 왜곡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아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놀이들은 부모의 조기교육에 대한 기대감에 묻혀버린다는 얘기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아이들은 평균 3개의 사교육을 받지만 엄마들은 학습을 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원에 오기 전 시간표대로 움직였던 아이들은 정작 친구들과 놀이를 못하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기도 한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 영·유아의 75% 가량이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그 규모는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폭의 10배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심 교수는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2학년말쯤 나타나는 내재적 자존감이 개인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유아시절 학습 스트레스에 치인 아이들은 실패감을 맛보고 이후 학습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유아기의 기억까지 되짚어 반감을 표하는 사례도 있다. 이때 일부러 공부를 안 하려고도 하는데, 이는 부모에게 가장 치명적인 앙갚음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적이다. 미성숙한 뇌에 부담이 이어지면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사그라진다. 서유헌 가천대학교 뇌과학연구원장은 “유아기부터 지식교육이 강조되고 있다”면서 “뇌가 순수할 때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되면 초·중·고 시기 인성교육으론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똑똑한 자녀 기르려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과대 관심 금물
입력 2016-08-21 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