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후쿠이는 어떻게 일본서 가장 행복한 마을이 됐나

입력 2016-08-19 04:46
시내 교통을 담당하는 경천철은 외곽으로 도시가 팽창하면 행정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역점적으로 추진한 사업. 황소자리 제공
대학생들이 주도한 후쿠이 활성화 콘테스트인 ‘시장이 되어보지 않겠습니까’ 캠페인 장면. 황소자리 제공
인구 79만명의 후쿠이현(福井懸)은 동해에 면한 일본 중부의 작은 지방자치단체다. 인근 도야마현, 이시카와현과 함께 ‘호쿠리쿠 지역’에 속한다. 일본의 변방, 대도시 사람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후쿠이현이 10년 넘게 일본 행복도 조사에서 1위를 유지하며 일본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다. 노동자 세대 실수입 1위, 초·중학교 학력평가 1위, 맞벌이 비율 1위, 정규직 사원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인구 10만명당 서점 숫자 1위이고, 노인과 아동 빈곤률은 가장 낮다. ‘일본의 북유럽’이라고도 불린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 후지요시 마사하루는 ‘이토록 멋진 마을’에서 ‘왜 후쿠이인가?’라는 질문을 들고 이 지역을 집중 탐구한다. 이 책은 한 지방 소도시의 기적 같은 성공담을 전해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 지방이 처한 저출산과 젊은이 유출로 인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방경제의 중심이던 제조기업의 사양화와 해외 유출,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지방재정난 등 이른바 ‘지방소멸’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상세하게 보고한다는 점에서 지방재생론, 지방혁신론으로서 매우 유용하다. 또 지방의 문제는 지방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방정치 옹호론이며, 지방에서 미래를 도모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지방생활 응원가이기도 하다.

후쿠이현은 안경, 섬유, 칠기가 중심인 중소 영세기업 집적도시로 1990년대 중국이 세계의 하청공장으로 대두하면서 일본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이었다. 사양산업 집적지라고 할 수 있지만 일본 제일, 세계 제일 기업이 수두룩하다. 후쿠이현 소재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 및 기술 중 세계 점유율 1위는 40개, 국내 점유율 1위는 51개나 된다.

저자는 후쿠이현의 재생과 번영의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한다. 그 중 하나가 노동 환경이다. 후쿠이현은 세대당 월평균 수입이 63만1600엔으로 도쿄를 제치고 전국 1위다. 1인당 평균이 높은 도쿄를 누른 것은 소득 격차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맞벌이 비율이 전국 1위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일하기 편한 조건을 구비했다. 대기아동이 없는 보육원수용률이 전국 1위이며, 여성 한 사람이 생애 1.61명을 낳을 정도로 출산율이 괜찮다.

아이를 기르는데 중요한 교육 문제도 해결했다. 전국학력평가에서 후쿠이현 초·중학교는 늘 전국 수위를 다툰다. 그런데 학원에 다니는 학생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낮다. 여기에는 일본에서 가장 빠른 ‘자발 교육’이 있었다. 중앙 교육행정에 대한 역발상에서 시작된 ‘후쿠이 교육방법’은 교실에 원탁을 도입하고 교실 벽을 없애는 등 다양한 공교육 혁신 실험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학교가 지역을 지키고 육성하는 거점이 되었다.

지방정치도 달랐다. 도야마시(도야마현)는 젊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대책팀을 구성했다. 그러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도시 확대를 멈춰야 했다. 교외 개발을 억제해 시가 중심부에 사람, 물건, 돈의 기능을 집약시키는 ‘컴팩트 시티’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놀라운 효과를 낳은 도야마시의 정책들은 실상 다른 도시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게 많다. 컴팩트 시티는 미국 포틀랜드시에서 베낀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임대자전거’ 제도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를 흉내 낸 것이다.

이 책은 혁신이 아니라면 해결될 수 없는 지방 위기에 대한 중앙정부의 대책이나 간섭이 얼마나 무용하고 해로운지 신랄하게 보여준다. 또 주민의 정치의식이 지방 재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한다. ‘안경의 도시’ 사바에 시민들은 인근 도시와 합병을 추진하려는 시장을 주민투표를 통해 해고해 버렸다. 도야마시 모리 시장은 자신들의 정책에 대해 형평성을 따지며 딴지를 거는 주장들을 강하게 반박한다. “그런 것조차 불공평하다고 비난한다면 지자체장은 어떤 정책도 펼 수 없어요… 사회구조 자체가 평등하지 않은데 불공평 타령만 해대면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지요.”

글=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