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모(38·여)씨는 광복절 연휴인 지난 14∼15일 이틀 사이에만 집 주변 백화점과 마트를 세 번 다녀왔다. 한 번은 아이 둘을 데리고 영화 감상, 나머지 두 번은 마트 쇼핑 겸 외식을 위한 외출이었다. 지난주 여름휴가에 강화도 여행을 다녀온 뒤 더위에 지쳐 연휴에는 집에서만 쉬겠다던 ‘집콕’ 계획은 아침 식사를 채 마치기 전부터 흐르는 땀에 포기했다. 휴가 성수기에 연휴라 한산할 줄 알았던 백화점과 마트는 주차장 입구부터 북적였다.
식당 주방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던 61세 신수민(가명·여)씨는 8월 들어 일을 내려놓고 있다. 푹푹 찌는 더위에 바깥보다 2∼3도는 더 더운 주방 일을 버텨내긴 무리였다. 7월 말 며칠 병원 신세를 진 뒤로 일을 쉬고 있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하루 4시간씩 1주일에 5일씩 일해 월 80만원씩은 벌었던 수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년보다 빠른 추석 준비도 벌써부터 걱정이다.
푹푹 찌다 못해 ‘지글지글 끓었다’에 가까웠던 여름이 지나고 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더위나 추위는 보통 경제활동도 위축시킨다. 이상기후를 피해 ‘집 안’에 웅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안에도 있기 힘들 정도였던 올여름 폭염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극장 등의 소비를 오히려 늘리는 등 내수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17일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7∼8월 평균 기온이 과거 평균 기온(1981∼2000년)보다 높았던 해에 백화점 판매는 상대적으로 좋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올해는 무더위가 길었을 뿐 아니라 거의 비가 오지 않는 ‘마른 여름’이 겹쳐 소비자들의 쇼핑 외출을 이끌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6일까지 롯데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 늘었다. 에어컨 소비가 급증하면서 가전 매출이 늘었고 식당 매출(14.2%)도 급증했다. 전국 극장의 관객 수는 이미 지난해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여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내수경기가 침체됐던 기저효과까지 더해져 올해 3분기 내수 경기 성장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방시설이 잘돼 있는 대형 유통업계와 달리 전통시장과 영세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식당 등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름휴가철 성수기를 노렸던 지역 피서지는 이용객 소비가 줄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노동자나 서비스업 노동자 등의 생산성이 크게 줄어들어 가계소득이 떨어지면 내수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날씨 영향을 크게 받는 농·축산업도 폭염으로 피해를 받는 분야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달 15일부터 지난 16일까지 한 달간 폭염으로 인한 가축 사육농가 피해를 조사한 결과 총 349만4575마리의 가축이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늘어났으며 최근 5년 내 가장 큰 피해 규모다.
글=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그래픽=이석희 박동민 기자
백화점·극장·마트 ‘북적’ vs 전통시장·영세 식당 ‘썰렁’
입력 2016-08-1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