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구조조정 논란] “부실 대학 정리해야” vs “지역 구심점 살려야”

입력 2016-08-18 04:02
서남대 학생과 교수들이 지난 6월 10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교육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학생과 교수들은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의 측근들로 구성된 ‘옛 재단’ 인사들이 내놓은 서남대 정상화 방안을 즉각 반려하라고 요구했다. 뉴시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14동 교육부 앞에 18일 시골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 교육부 규탄 집회를 연다. 부실대학의 대명사격인 전북 남원의 서남대 폐교를 막으려는 집회다. 경찰은 최대 1200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일흔을 넘긴 어르신들도 집회에 참여한다. 서남대 교직원과 남원 주민들은 40여일째 교육부 앞에서 소규모 릴레이 집회를 해왔다. 교육부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남원 주민들은 대규모 집회로 열기로 한 것이다.

교육부가 세종시로 옮긴 뒤 이런 규모의 집회는 드문 일이다. 교육부 정문 앞 공터는 서남대를 폐교해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올리려는 정부와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앞세워 서남대 폐교를 막아내려는 남원 주민들이 부딪히는 현장이 된다. 제2, 제3의 서남대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남원 주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평가다. 양측의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을 ‘교육부 관료’와 ‘남원 시민’의 가상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교육부 관료(이하 관료)=남원 본교는 평생교육시설로 전환하고 아산캠퍼스 위주로 정상화하는 방안이 합리적일 겁니다. 의대는 다른 대학에서 하도록 해야겠죠.

△남원 주민(이하 주민)=참 편하게 말씀하십니다. 중앙정부 입장에선 대학 하나가 대수롭지 않겠지만 지역에선 간단치 않습니다. 지역 사회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관료=대학이 지역 경제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교육은 교육입니다. 학생 수도 부족해지는데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곳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겁니다.

△주민=남원 인구가 옛날엔 20만명대였어요. 지금은 8만명대예요. 젊은이를 찾아볼 수 없어요. 취업이든 장사든 불가능한 동네가 되고 있어요. 어찌 교육과 경제, 문화를 무 자르듯 구별해요. 대학은 이 모든 것의 센터입니다.

△관료=적어도 의대는 다른 곳에서 해야 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어차피 전국 모든 의대는 정부에서 지정한 평가기관의 평가를 통과 못하면 폐쇄할 수 있도록 최근 제도가 완비됐어요. 변변한 병원 하나 끼고 있지 못해 실습교육도 제대로 못하는 의대가 이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요.

△주민=교육부 뭐하는 곳입니까. 교육을 제대로 하도록 관리하고 감독하라고 있는 부처 아닙니까. 대학 부실의 책임이 남원 주민에게 있나요? 교육부도 이홍하씨에게 뇌물 받고 감독 제대로 못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닙니까. 이런 피해를 왜 남원 주민들이 떠안아야 합니까. (교육부에서 사학 감사를 담당하는 6급 직원이 2013년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교육부 간부들의 연루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관료=개인의 일탈일 뿐입니다. 벌을 받았습니다. 교육부는 특정 지역이 아니라 국가 고등교육 전체를 바라보고 정책을 폅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요. 고등교육의 충격을 완화하려면 대학 정원을 줄여야 합니다. 서남대 같은 곳이 정리돼야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집니다.

△주민=그런 논리면 서울에만 대학을 둬야 한다는 겁니까. 남원은 대한민국 아닙니까. 서울은 어차피 포화상태입니다. 지역균형발전이 정부 정책 기조라면 서울의 대형 대학들이 양보해야지요.

△관료=수도권 대학들도 정원을 줄이고 있습니다. 왜 잘하고 있는 곳에 정부가 개입해 억지로 줄이느냐고 반발이 강합니다. 서남대가 회생을 바랐다면 수년간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해법을 찾지 못한 것 아닌가요.

△주민=교육부가 방해만 안 했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어요. 서남대 교직원들이 학생 모집하고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때 교육부는 ‘서남대 부실대’란 보도자료 뿌리고 다녔죠. 남들 다 받는 국가장학금도 안 주고. 지역균형발전이란 말 자체를 말든가. 결국 서남대 말려 죽인 다음 대통령에게 구조조정 실적 보여주려는 거 아닌가요. 힘 없는 지역민 희생양 삼아서 말이죠.

현재 교육부는 서남대 문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의대 폐지와 남원 본교를 평생학습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공식적인 입장은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남원 등 전북지역 국회의원들과 남원시장 등은 조직적으로 반발 여론을 모으고 있다. 서남대를 시작으로 부실대학들이 수술대에 오르고 대학 구조조정이 본궤도에 오르면 대학 구성원과 지역주민들, 지역 정치인, 교육부 등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