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탈북한 태영호 공사는 주영 북한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 바로 아래 직책에 해당하는 고위 외교관이었다. 영국 대사관은 북한 외교관의 출세 코스 중 하나로 이용호 현 외무상도 2003년 주영대사를 지낸 바 있다.
영국 BBC의 서울·평양 특파원인 스티브 에번스는 ‘내 친구 탈북자(My friend the North Korean defector)’라는 글을 BBC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에번스는 태 공사가 보수적이고 말쑥한 영국 중산층 같았으며 영국 교외 특유의 생활방식에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에번스는 런던 서부 액트의 한 인도 식당에서 태 공사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태 공사는 평소 카레를 좋아했지만 당뇨 초기 증세가 있어 밥 없이 카레만 먹었다고 그는 전했다. 지역 보건의는 당뇨병을 ‘괴물’에 비유하며 “쌀과 다른 탄수화물은 이 괴물을 더욱 가까이 불러들일 것”이라고 태 공사에게 경고했다고 한다.
태 공사는 가정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태 공사가 골프에 열중하는 걸 못마땅해하자 테니스로 취미를 바꿨다. 아내는 “골프와 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골프채를 놓지 않으면 평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가족과 건강에 대해 주로 대화를 나눴다. 태 공사의 아들은 영국 대학에서 공공보건 관련 경제학 학위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학위 논문에서 ‘평양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려면 장애인 주차 공간이 확충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고 에번스는 전했다.
태 공사는 에번스에게 “올 여름 외교관 업무를 마치면 평양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번스는 그가 가족과 함께 제3국으로 망명할 것이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에게선 체제에 대한 불신이나 의심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에번스는 “이제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의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연락을 해봤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BBC 특파원이 본 태영호 공사, 아내 때문에 골프 그만 둔 애처가
입력 2016-08-17 18:14 수정 2016-08-17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