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아는 만큼 보인다] 진종오 “형 보면 친한 척해라”… ‘남북 뜨거운 악수’ 한반도 울컥

입력 2016-08-18 04:23
한국 사격의 간판스타 진종오(왼쪽)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데오도루 올림픽사격장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시상식에서 동메달리스트인 북한의 김성국과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눈물과 환희가 교차하는 시상식은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다.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은 더 이상 서로 적이 아니다. 모두가 승자다. 때로 시상식은 인권을 옹호하는 장이 되기도 하고, 평화를 부르짖는 장이 되기도 한다. 역대 올림픽 시상식에선 어떤 드라마가 펼쳐졌을까.

고대올림픽에서 우승자들은 소년들이 황금 낫으로 베어 온 올리브 화환을 선사받았다. 이들은 자신의 우승을 도운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야 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올림픽에선 우승자들이 올리브 가지로 만든 관과 우승 증명서, 은으로 만든 메달을 받았다. 준우승자들은 월계관과 동메달을 받았고, 3위에 오른 선수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이르러서야 삼단으로 된 시상대, 메달리스트들의 국기 게양, 국가 연주가 등장했다.

시상식에선 종종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1968 멕시코올림픽 육상 남자 200m 금메달리스트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리스트 존 칼로스(이상 미국)는 시상대에서 미국 국가 연주 도중 고개를 숙인 채 검정 장갑을 낀 손을 높이 들었다. 흑인 인종차별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흑인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말콤 엑스가 살해당한 데 대한 저항의 몸짓이었다.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 순간도 있다. 1984 LA올림픽 복싱 헤비급 정상에 오른 유고슬라비아의 안톤 요시포비치는 동메달에 그친 에반더 홀리필드(미국)를 금메달 단상으로 끌어올렸다. 홀리필드가 준결승전에서 심판 편파판정으로 패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10m 공기권총 시상식에선 지구촌 사람들의 가슴을 저민 장면이 나왔다. 은메달을 딴 나탈리아 파데리나(러시아)와 동메달을 딴 니노 살루크바체(조지아)는 시상식에서 포옹하며 각각 자국에 평화를 요청했다. 당시 두 국가는 전쟁 중이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시상식 직전 프러포즈 이벤트가 벌어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국 여자 다이빙 대표팀의 은메달리스트 허쯔(26)는 지난 14일 여자 3m 스프링보드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고, 시상식에서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 3m 스프링보드 동메달리스트인 친카이(30)의 청혼을 받았다. 친카이가 허쯔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준 뒤 포옹하자 관중은 박수를 보냈다.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시상식 장면은 ‘남북한의 악수’였다. 남자 50m 권총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진종오(37)와 북한의동메달리스트 김성국(31)은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했다. 진종오는 여섯 살 어린 김성국에게 “너 앞으로 형 보면 친한 척해라”고 했다. 앞서 김성국은 진종오 우승 직후 축하인사를 건넸고, 진종오는 김성국을 안았다. 김성국은 기자회견에서 “1등이 남조선, 3등이 북조선인데 1등과 3등이 하나의 조선에서 나오면 더 큰 메달이 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됐지만 두 선수의 악수는 정치를 뛰어넘은 올림픽 정신을 보여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수들의 몸짓을 막지 못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