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7일 강령전문에 ‘노동자’를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당내에서 벌어졌던 정체성 논란이 봉합됐다. 앞서 당 강령·정책분과위는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는 문구에서 노동자를 빼고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로 수정한 초안을 만들었다. 그러자 친문재인계 등 다수 의원들이 당 정체성 훼손이라고 반발했다. 전당대회 당대표에 출마한 후보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서민에 노동자가 포함돼 있으며, 세부강령에 더 강력한 노동정책이 추가돼 있다는 분과위 설명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선명성 경쟁에 노선투쟁 양상까지 벌어지자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날 없던 일로 했다. 오히려 강령은 ‘노동자, 농어민, 소상공인 등 서민과 중산층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로 바뀌었다. 비대위는 또 분과위가 당초 삭제했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도 살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지속된 햇볕정책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다. 강령은 27일 전당대회에서 추인될 예정이다.
이로써 더민주에서 ‘노동자’ 삭제 논란은 한 편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던진 시사점은 작지 않다. 4·13총선 승리로 수권 가능성을 높인 더민주가 여전히 운동권 정당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더민주 구성원들은 곧 퇴임하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진단’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것도 정체성이라고 하고 저것도 정체성이라고 하는데, 웬놈의 정체성이 그리 많으냐. ‘노동자’ 단어 하나 빠진 것 갖고 난리치는 정당으로는 안 된다”면서 “이 상태로 계속 가면 과연 집권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로선 정말 암울해 보인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좌파운동권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한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유럽 사회주의 계열 정당들도 대중정당으로 변모해 성공하는데 한국의 제1야당은 도무지 변할 기미가 없다. 더민주는 철지난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한다. 절대 다수의 당원과 지지자들도 이를 위해 존재한다. 더민주는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길 바란다.
[사설] 더민주 정체성 타령만 해서 집권할 수 있겠나
입력 2016-08-17 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