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각 성과 마을로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갔다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여정은 누가복음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상징하며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되고, 성령의 새 시대가 시작되는 장소입니다. 구원 사역의 완성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며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곧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여정 곳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에 대해 예고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이해조차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주님, 구원을 받는 자가 적은가요?” 그러나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대답을 합니다. 수량적 차원의 질문을 삶의 태도에 대한 윤리적 차원으로 바꿔 답변한 것입니다.
지금도 천국에 들어갈 사람의 수가 한정돼 있다며 매진을 앞둔 표를 구매하듯 신앙생활을 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무섭게 말씀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아 모두 나를 떠나가라. 나는 너희들을 알지 못한다.” 천국은 추석 열차표를 사듯 단지 몇 명에게만 허락된 곳이 아닙니다.
“떠나가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억울했던지 다시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강변합니다. “예수님, 저희들은 예수님과 한 식탁에서 밥도 같이 먹었어요. 또 예수님의 가르침을 길에서 직접 들었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과 식사를 하고 예수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더라도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하고 신학을 공부했더라도 예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밖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모두 다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교회는 주님과 함께 식사하면서 가르침을 받는 데 열중하지만 정작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삶의 태도는 결핍돼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내려놓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인 복만 추구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사람들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해 찾는 이가 적습니다. 들어갈 사람은 많은데 문이 좁아 미처 다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이 너무 힘들어서 좁은 문을 찾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미신적인 종교행위가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과 그 실천이 어우러진 종교입니다. 많은 것을 짊어지고 좁은 문을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좁은 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비워야하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남상준 목사 (대전 소망루터교회)
◇약력=△연세대 신학대학원 신약학 박사과정 수료 △현 기독교한국루터회 영문서기, 루터대 겸임교수
[오늘의 설교] 좁은 문
입력 2016-08-17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