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은 러시아 발레의 ‘살아있는 신화’ 유리 그리가로비치에게 다시 한 번 연락을 했다. 국립발레단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스파르타쿠스’를 공연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발레 팬이라면 한번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그리가로비치는 1964년부터 95년까지 30여년간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거장이다. 그가 63년 볼쇼이발레단에서 초연한 ‘스파르타쿠스’는 고대 로마시대 노예 검투사들의 반란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웅장한 남성 발레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국립발레단은 97년 한 차례 그에게 작품 요청을 했다가 좌절된 바 있다. 당시 국립극장 전속단체였던 국립발레단이 해외 안무가와 크리에이티브팀까지 데려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재단법인으로 바뀌며 운영에 자율성이 생기자 또다시 그에게 연락을 취했고, 마침내 그가 마음을 바꿔 내한했다.
그의 지도 아래 국립발레단은 2000년 ‘호두까기인형’에 이어 이듬해 ‘백조의 호수’와 ‘스파르타쿠스’를 차례로 올렸다. 국립발레단이 ‘스파르타쿠스’를 제대로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멋지게 소화해내며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최태지 전 단장은 17일 “국립발레단이 창단 이후 많은 발전을 해 왔지만 레퍼토리 축적 면에서 그리가로비치보다 더 큰 기여를 한 분은 없다”면서 “그는 세 작품을 올리는 동안 서울에서 몇 달씩 거주하면서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을 직접 가르쳤다”고 회고했다.
발레단의 극진한 대우에 감동받은 그는 ‘호두까기인형’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의 국내 공연에선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유명 안무가의 작품을 라이선스로 가져오려면 3년 단위로 계약하고 공연 때마다 만만치 않은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게 관행이다. 이후 국립발레단은 그가 안무한 ‘라바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 ‘라이몬다’도 무대에 올렸다. 이 역시 국내 공연에서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다.
2006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현 성신여대 교수)이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당스를 수상한 것이나 2010년 국립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의 최초 합동공연 ‘라이몬다’가 예술의전당과 볼쇼이극장 무대에 오른 것은 지금도 러시아 발레의 최고 실력자인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게 공연계의 평가다.
국립발레단은 26∼28일 ‘스파르타쿠스’를 4년만에 다시 올린다. 2001년 아시아 초연에 이어 2007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발레단과의 합동 공연, 2012년 국립발레단 50주년 기념 공연에 이어 네 번째다. 그리가로비치가 21일 내한해 단원들의 춤을 최종 확인하고 지도할 예정이다. 89세라는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내한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내한을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은 물론 팬들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휴식시간 포함 총 155분, 1만∼3만원.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돌아온 ‘유리 선생님’… 국립발레단과 다시 하나 되다
입력 2016-08-18 0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