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깨운 ‘빈 들의 외침’은 살아있다

입력 2016-08-16 21:11 수정 2016-08-16 21:44
경동교회 설립자인 강원용 목사가 17일로 10주기를 맞았다. 강 목사는 한국 현대사의 스승으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전했다. 국민일보DB
탁월한 웅변가이자 활동가. 교회와 사회의 벽을 허무는 대화운동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어간 인물. 어두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복음의 빛을 쏘아 올리며 기독교적 통찰을 건져 올렸던 우리 시대 목회자. 경동교회에서 보여준 부단한 교회 갱신, 한국 사회 발전에 공헌한 크리스찬아카데미 운동, 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의 유산은 한국 사회에 주어진 축복이었다. 사자 같던 용모에서 터져 나왔던 명설교는 아직도 선하다. 17일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의 길을 제시했던 여해(如海) 강원용(1917∼2006) 목사의 10주기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있다.

◇사회 참여와 복음 선포의 균형을 추구했다=강 목사는 함경도의 가난한 화전민 아들로 태어나 14세 때 그리스도를 만났다. 1935년 북간도 용정으로 건너가 은진중학교에 입학, 평생의 스승인 장공 김재준 목사와 함께 윤동주 문익환 등 동문들과 공부하며 기독교 정신과 민족의식을 내면화했다.

은진중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만주로 돌아와 농촌선교운동을 펼쳤다. 해방 후엔 경동교회의 모체인 선린전도관을 설립했고, 이후 김재준 목사를 초대목사로 해서 경동교회를 세웠다. 강 목사는 49년 목사 안수를 받고 경동교회 담임으로 취임, 40여년간 목회의 길을 걸었다.

강 목사는 교파를 초월해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포용과 배려의 에큐메니컬 정신은 보수주의 쪽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명혁(강변교회 원로) 목사가 대표적이다. 김 목사는 “나는 당시 자유주의신학을 비판했던 역할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강 목사는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고맙다고 하더라”며 “강 목사는 통이 큰 분이다.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회고했다.

강 목사는 그의 마지막 저서인 ‘내가 믿는 그리스도’에서 신앙의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고백을 드러냄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던졌다. “모든 것이 변하고 새로워지고 상대화되었으나 신비롭게도 항상 제 삶의 중심, 마음의 저 깊은 곳에는 열네 살 청소년 시기에 믿기로 작정하고 나의 주님으로 받아모신 예수님이 늘 떠나지 않고 계셨습니다.”

◇빈 들의 외침, 그의 자리는 강단이었다=강 목사는 평생 설교자였다. 한 번도 이 사실을 잊지 않았다. 15일 출간된 추모 설교선집 ‘돌들이 소리치리라(사진·대한기독교서회)’는 그의 이런 면모를 그대로 보여줬다.

선집은 강 목사 인생을 시대 순으로 배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해방 직후∼1960년대) ‘오직 말씀으로’(70년대) ‘순례하는 강단’(80년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은퇴 이후) 등 총 48편의 설교를 담았다.

한국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권면은 작금의 위기를 일찍부터 간파한 듯 하다. 그는 60년대 한국교회가 중병에 걸린 징후에 대해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였던 사데교회(계 3:1∼3)를 본문 삼아 경고의 말씀을 전했다. 강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각종 질병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다”며 “색맹과 근시(타신학과 교단 비판), 지나친 음성·양성 반응(고립주의, 세속화), 앉은뱅이(실천 없음), 암질환(교세 확장)과 난치병(말씀 포기)으로 병들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한 처방은 “자신의 병든 상태를 확인하고 주님께 치료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회개요, 이것이 교회의 갱신이요, 이것이 교회가 사는 것”이라고 일갈했다(‘병든 교회’).

강 목사는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이어진 군사정권 치하의 암울한 시대를 살았다. 서슬 퍼런 시절에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서 이뤄지길 소망했다. 설교에서는 예언자의 탄식을 그대로 전달했다. 구약성경 예언자의 ‘예’는 ‘미리 예(豫)’가 아니라 ‘맡길 예(預)’를 쓴다.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 예언자이다.

“상처를 부둥켜안고 이 거짓의 행렬을 뚫고 나아가는 길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입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무리와 반대하는 무리에게 똑같이 ‘아니오!’를 선고하면서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앞을 선행하고 있습니다. 이 행진을 막을 힘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진실의 소리가 잠잠하게 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돌들이 소리치리라’)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는 “이번 선집은 강 목사가 평생 했던 설교 가운데서 시대마다 세례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고 싶었던 예언자적 목소리를 뽑아 묶은 것”이라며 “당시 강 목사는 예수의 길을 준비했던 세례요한의 심정에서 자신을 빈 들의 소리라고 외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재단법인 ‘여해와 함께’는 17일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남한강공원묘원 묘소를 참배하고(오전 11시30분) 경동교회에서 추모음악회(오후 7시30분)와 출판기념회(오후 9시)를 개최한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