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홍성헌] 호랑이 사냥?… 군수 우상화 눈살

입력 2016-08-16 19:40 수정 2016-08-16 22:02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 단체장이라면 옛 속담의 가르침을 되새겨 시민들에게 의심받을 만한 작은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

충북 괴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산막이 옛길에 가면 ‘산막이 옛길을 만든 임각수 군수가 청년시절 창을 들고 사냥을 다녔던 곳’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황당한 이 안내판은 또 ‘겨울이면 눈 속에 호랑이 발자국이 남겨져 있어 1968년까지 호랑이가 드나들며 살았던 굴’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안내판을 읽다 보면 ‘용비어천가’ 수준을 넘어 군수를 영웅시한 느낌마저 든다. 단체장의 치적 홍보를 넘어 ‘미화’하려는 의도가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직무가 정지된 군수의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안내판을 설치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한 관광객의 따끔한 지적은 공직자라면 곱씹어 봐야할 대목이다.

괴산군은 2011년 산막이 옛길을 개장하면서 호랑이 굴 앞에 호랑이 조형물을 설치하고 지난 3월 이곳에 호랑이 굴 사연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세웠다. 임 군수가 2014년 2월 직접 쓴 자서전 ‘산막이 옛길에 서서’에는 1968년 창을 들고 호랑이를 잡으려다 실패했던 일화가 소개돼 있다.

산막이 옛길은 괴산호를 따라 펼쳐진 4㎞의 산길 코스다. 호랑이 굴 외에 여우비나 여름 무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가는 여우비 바위굴, 연리지, 정사목, 소나무동산 등 26개의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조성돼 있다. 산막이 옛길은 올해 1월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대한민국 걷기 여행길 10곳’에 지정되는 등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둘레길로 명성을 얻고 있다. 개장 첫해 88만명이 다녀가는 등 연간 150만명이 찾고 있다.

하지만 임 군수는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외식업체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월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군 관계자는 “호랑이 굴 사연을 스토리텔링하면서 임 군수 자서전에서 내용을 발췌했는데 확대 해석돼 당황스럽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 수긍하는 관광객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홍성헌 사회2부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