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검사장과 게임업계 벤처 신화를 일군 기업인이 ‘뇌물을 받은 자’와 ‘뇌물을 준 자’로 함께 법정에 섰다. 서울대 동창생이자 ‘30년 지기’인 두 사람은 서로를 외면했다.
16일 오후 2시 서울법원종합청사 509호 법정. 하늘색 수의를 입은 진경준(49) 전 검사장이 하얀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출석했다. 얼마 전까지 검사장이었던 그의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이어 검은 정장 차림의 김정주(48) NXC 회장이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다. 피고인석 오른쪽에 진 전 검사장이, 왼쪽에 김 회장이 자리했다. 두 사람은 10㎝ 간격의 비좁은 좌석에 어깨를 웅크리고 나란히 앉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이날 열린 진 전 검사장과 김 회장의 뇌물 수수·공여 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진 전 검사장 측은 “수사 기록 검토가 덜 됐다”며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 회장 측은 “(혐의를 시인했던) 검찰에서의 진술을 인정한다”면서도 “의견을 정리할 시간을 2∼3주 달라”고 요청했다.
김 회장은 재판 내내 두 발을 가지런히 붙인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진 전 검사장은 담담한 얼굴로 법대만 응시했다. 재판부가 직업을 묻자 진 전 검사장은 “현재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국민참여재판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재판은 진 전 검사장의 넥슨 주식 취득과 관련한 ‘뇌물 액수 산정 기준’이 쟁점이 됐다. 재판부가 “진 전 검사장의 넥슨 주식 관련 뇌물 수수액을 8억5000여만원으로 산정한 이유를 석명(釋明)해 달라”고 하자, 검찰은 “진 전 검사장이 처음 넥슨에서 차용한 4억2500만원으로 매입한 넥슨 주식을 10억원에 매도하고, 그중 일부인 8억5000여만원으로 다시 일본 넥슨재팬 주식을 매입했다”며 “넥슨재팬 주식 취득 금액이 (진 전 검사장이 거둔) 이익의 전제”라고 했다.
진 전 검사장은 넥슨 비상장 주식을 공짜로 받아 130억원대 시세 차익을 거둔 혐의 등으로 지난달 30일 구속 기소됐다. 지난 3월 말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주식 대박’ 사실이 드러난 지 4개월 만이었다. 현직 검사장이 구속 기소되고 해임 처분까지 받은 건 68년 검찰 역사상 최초였다.
그는 4950만원 상당의 넥슨 명의 법인 리스차량을 공짜로 쓴 뒤 이 차량을 넘겨받고, 2005년부터 9년간 11차례에 걸쳐 가족 해외여행 경비 5010만원을 지원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절친했던 김 회장에게 공짜 주식을 비롯해 차량, 해외여행 경비까지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재판이 끝난 뒤 “진 전 검사장과 함께 재판을 받게 된 심경이 어떤가” “혐의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은 채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돌아갔다. 두 사람의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다음 달 12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최고 엘리트들의 추락… 피고인으로 법정서 만난 ‘두 친구’
입력 2016-08-16 18:53 수정 2016-08-17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