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피해 도망쳤던 유대계 영국인 후손들, 다시 독일로… 역사의 아이러니?

입력 2016-08-17 04:03
아우슈비츠수용소. 국민일보DB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이후 유대계 영국인의 독일 시민권 신청이 쏟아지고 있다. 나치가 군림했던 독일에서 박해를 피해 도망쳤던 유대인의 후손이 EU 시민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 발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런던 주재 독일대사관에 브렉시트를 거부하는 유대계 영국인의 시민권 복권 절차 문의가 잇따른다고 보도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브렉시트 결정 이후 유대계 영국인 400여명이 독일 시민권 취득 방법을 문의했다”며 “이 중 100명 넘는 사람이 시민권을 신청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매년 20여건이 접수됐던 것과 비교하면 5배나 늘어난 수치다.

젊은 세대 유대인에게 독일이 차츰 편안하고 거부감 없는 국가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이들에겐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국가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원하는 곳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권리가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것이다. 런던에 거주하는 유대인 필립 레빈(35)은 “그동안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독일 시민권을 고려하고 있다”며 “유럽시민으로 남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뒷문’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독일 국적을 갖기 위해선 부모 중 한 사람 이상이 독일인이거나 독일에서 일정기간 체류한 조건을 만족해야 하지만 유대인이나 나치 독일에서 달아난 정치적 난민은 예외다. 독일기본법 ‘시민권 회복’ 원칙에 따라 1933∼1945년 정치·인종·종교적 이유로 시민권을 박탈당한 사람과 후손은 간단한 신청만으로 시민권을 회복할 수 있다. 마이클 뉴먼 유대인난민협회장은 “75년 협회 역사상 이런 적은 없었다. 브렉시트는 판도를 바꿔놓은 게임체인저(game-changer)”라고 말했다.

나치 독일의 박해가 시작된 뒤 1939년까지 독일과 오스트리아, 옛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유대인 7만여명이 영국으로 피했다. 당시 나치는 유대계 독일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재산을 빼앗았다. 1945년 1월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명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