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최고야”… 동갑내기 룸메이트의 우정

입력 2016-08-17 04:09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 75㎏급 그레코로만형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한 김현우와 66㎏급에 출전한 류한수(왼쪽부터)가 지난달 18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국가대표 미디어데이에서 케틀벨을 들어올리며 함께 훈련하고 있다. 조선일보 제공

레슬링 국가대표 김현우(28·삼성생명)에게 14일(이하 현지시간)은 정말 긴 하루였다. 오전에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5㎏급 16강전에서 러시아의 로만 블라소프에게 편파판정으로 졌다. 하지만 오후에 투혼을 발휘해 패자부활전에서 값진 동메달을 수확했다.

밤늦게 그는 선수촌 숙소에 도착했다. 고단했던 몸을 눕히고 자려 했다. 하지만 동메달을 따내는 과정에서 탈구된 오른쪽 팔이 욱신거렸다. 아직도 금메달을 도둑맞았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그의 뇌리 속에 박혀 있었다.

그런 김현우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김인섭(43) 삼성생명 코치였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2회전 탈락 후 방황하던 그를 이끌어준 은사였다. 김 코치는 마음 아파하는 제자에게 차마 전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다. “나에게 영원한 챔피언은 김현우다.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 끝까지 널 응원할게”라고 썼다. 이 말에 김현우는 울컥했다. 그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숙소 한쪽에는 그를 지켜보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함께 올림픽에 출전하는 류한수(28·삼성생명)였다. 둘은 4년 전부터 줄곧 룸메이트로 생활하고 있다. 같은 소속팀에다 김현우가 남자 그레코로만형 66㎏급에 있을 때 항상 훈련 파트너가 돼주고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준 선수가 류한수였다. 김현우가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체급을 올려 류한수가 66㎏급을 물려받았다. 둘은 항상 같이 다녔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류한수가 생일이 빨라 먼저 학교에 입학해 김현우는 그를 형이라고 부르며 의지했다.

김현우와 류한수는 리우로 떠나기 전에 한 말을 상기했다. 두 선수는 “우리가 금메달을 따도 흐트러지지 말자, 경기 끝날 때까지. 그리고 지더라도 흐트러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김현우는 “형,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했다. 류한수는 “너는 최선을 다했잖아. 네 몫까지 열심히 할게”라고 답했다. 그렇게 두 선수는 서로를 다독이며 잠자리에 들었다.

김현우는 잠을 자고 나니 마음이 한결 괜찮아졌다고 한다. 아침에 검진을 받았는데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리고 15일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리는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 갔다. 그는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뭉클했다. 가장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또 “실점을 많이 했기에, 내 실수로 졌다. 결과에 승복하고 심판 판정에 이의는 없다”고 했다. 곧 경기를 펼치는 ‘형’ 류한수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류한수 선수는 정신력이 강하고, 준비도 워낙 잘해서 잘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옆에서 더 잘할 수 있도록 꼭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김현우는 다음 날 아픈 팔을 이끌고 류한수가 출전하는 경기장에서 열렬히 응원했다. 김 코치는 김현우와 류한수에게 “혼자서는 갈 수 없다. 늘 팀을 생각해라. 우리 팀 선수 경기가 끝날 때까지 팀을 위해 움직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동생의 응원에 류한수도 힘을 내며 경기에 임했다.

제자를 응원하는 김 코치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김현우가 동메달을 따낸 뒤 태극기를 매트에 깔고 한참을 울었을 때 자신도 울었다고 했다. 그는 “절할 때 현우 마음이 읽어졌다. 현우의 뒷모습에서 울컥했다”고 했다. 김 코치는 이 말을 하면서 눈이 촉촉해졌다. 그래도 경기를 펼치는 류한수에 대한 응원을 잊지 않았다. 김 코치는 “어쩌면 금메달이 제일 간절한 선수가 류한수다. 한수는 오랜 무명생활을 지냈다.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인데 해내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리우올림픽 경험이 두 선수에게 큰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우는 이런 걸로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한수도 정신력이 강하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리우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더 높은 곳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