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대지를 뒤덮은 어둠이 아직 물러나지 않은 새벽 4시 30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164의 4 목장용지. 열기구 출발지다. 밤새 이슬이 목초지에 구슬처럼 싱그럽게 매달려 있다. 열기구 투어에 초청된 사람들이 어둠을 뚫고 하나둘 모이자 열기구를 실은 트레일러 한대가 미끄러지듯이 다가온다.
베테랑 열기구 조종사인 김종국(53) ㈜오름열기구투어 대표가 헬륨풍선을 띄워 바람의 방향을 살피더니 출발장소를 옮기기로 결정한다. 새로운 출발장소는 산굼부리. 이미 여명이 밝아오고 있어 서둘러 이동했다. 출발지에 도착하자마자 관계자 여섯명이 승객 탑승용 바스켓(바구니)을 눕히고 열기구 풍선(기낭)을 펼친다. 이내 굉음을 내는 중형 송풍기가 풍선 안으로 강력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열기구 풍선이 어느 정도 부풀어지자 이번에는 프로판가스가 연결된 버너가 강력한 불꽃을 내뿜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이 옆으로 누워있던 열기구가 제자리에 우뚝 선다. 풍선은 7787㎥로 자체 무게만 250㎏에 달한다. 내부에 RV차량 100대가 들어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오전 6시. 이륙 준비가 완료되자 김 대표가 탑승객 15명에게 안전수칙을 설명하고 바구니에 탈 것을 주문한다. 가운데 조종사 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 4명이 탈 수 있는 방이 2개씩 붙어 있다. 조종사 방에는 버너 연료인 프로판 가스와 GPS기기 등 조종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들이 들어 있다. 바구니만 700㎏에 프로판 연료와 탑승자 몸무게를 더하면 전체무게는 2t에 달한다.
버너 두 개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구쳐 오르면서 열기구를 하늘로 띄운다. 바로 옆 산굼부리가 서서히 자신의 속내를 내보인다. 깊은 분화구 속 안개는 보물이라도 숨기고 있는 듯 분화구 바닥의 모습을 내놓지 않는다.
열기구는 이륙하자마자 동쪽으로 흐르듯이 지나가며 채 5분도 되지 않아 지상 150m 상공으로 자연스럽게 날아오른다. 제주 동부지역 오름은 물론 성산일출봉과 우도 사이의 바다로 떠오르는 태양이 숨이 멎을 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발아래 해피목장, 늘푸른목장의 동그랗고 네모난 목초지마다 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겹게 풀을 뜯으며 조용한 아침을 맞는다. 하늘색 건물의 지붕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그 너머에는 정석비행장의 활주로와 전시된 비행기가 보인다. 멀리 눈을 돌리자 아침햇살을 받은 한라산이 수줍은 듯 붉은 빛을 토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
열기구는 고도를 낮췄다가 높여가며 비행에 알맞은 바람을 찾아 다녔다. 흔들림도 거의 없이 안정적으로 하늘을 누볐다. 이어 눈앞에 거대한 오름이 나타난다. 성불오름이다. 부딪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잠시. 열기구는 오름 옆으로 흐르는 기류를 타고 비키듯이 스쳐간다. 한라산에서 시작된 제주 동부지역 오름군락은 세계자연유산 제주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전하면서 감탄사를 자아낸다. 그 아래 짙은 녹음을 내뿜는 숲속에서는 노루가 뛰어다니고 꿩이 종종걸음으로 달아난다.
성불오름을 지난 열기구는 남영교차로 인근 사이프러스 골프장 입구에 안착했다. 착륙 때 혹시나 큰 충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도로에 한번 ‘쿵’ 튕긴 뒤 별다른 충격 없이 바로 옆 폭 2m 정도의 인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등에서 2000여 차례 비행한 조종사의 베테랑다운 면모가 나타났다. 27분 동안 7㎞를 비행했다. 사용한 프로판 가스는 일반 가정집 기준 6개월치 분량이라고 한다. 풍선의 바람을 빼고 장비를 정리하는데 30여분이 걸렸다.
처음 모였던 목장용지로 이동하니 다과가 준비돼 있었다. 김 대표는 비행을 자축하는 샴페인을 터뜨렸다. 샴페인을 터뜨리는 유래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200년전 쯤 최초의 열기구는 지금처럼 가스가 아닌 장작이나 짚을 때서 열을 냈다고 한다. 파리에서 이륙해 교외 농가에 착륙하자 마을사람들이 놀란 건 당연지사.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하늘에서 내려오자 자신들을 죽이러 온 악마라고 생각하고 해치려 했다는 것이다. 이 때 기구 탑승자들이 갖고 있던 샴페인을 나눠마시며 똑같은 사람임을 알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조종사가 착륙하는 지역의 꽃을 꺾어서 처음 비행한 사람한테 선물로 주는 전통도 곁들여줬다.
김 대표는 “송당리를 비롯한 제주도내 곳곳은 새벽시간 바람이 잔잔하고, 세계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풍광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열기구를 타는 데 최적의 조건”이라며 “송당리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좋은 여건을 활용해 제주를 대한민국 대표 열기구 관광 체험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여행메모
제주 오름군락 위 1시간 자유 비행… 지역 업체 공동발전을 성장모델로
㈜오름열기구투어가 추진하는 여행상품은 세계적 명성의 제주 오름 군락을 150m 상공에서 약 1시간 동안 자유 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샴페인 등 고급 음료와 다과를 곁들인 비행 기념 세리머니 등 서비스가 포함돼 해외 상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고품격 프리미엄 상품이다.
이미 한국관광공사로부터 경쟁력 있는 고품격 관광 콘텐츠로서 그 잠재성을 인정받아 2015 예비창조관광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특히 이번 상품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지역 마을의 지원과 제주관광향토자본 제주패스와의 제휴 협약 등을 토대로 지역 업체 공동 발전을 성장 모델로 삼고 있다. 이르면 이달말부터 일반인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터키 카파도키아, 케냐 사파리 등의 열기구 투어처럼 일반인들이 해외를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열기구 비행은 '제주 오름의 아침을 깨우다'라는 슬로건 아래 매일 오전 5시쯤 출발한다. 대기가 안정적이어서 열기구 비행에 가장 적합한 시기다. 이륙 후 약 45∼65분 비행한다. 출발지는 송당리 아부오름 건너편 목장이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변경된다. 한번 비행에 최소 2명에서 16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만 8세 이상 탑승가능하지만 임산부, 회복 중인 환자는 불가능하다. 비행 후 기념증명서를 제공하며 가격은 부가가치세 포함 39만6000원.
제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