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9월 일본과 연합국이 서명한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청원, 그리고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돼 있다. 일본은 이 영토조항에 독도가 빠졌다는 점을 이유로 1905년 시마네현 오키섬에 편입된 독도가 일본 영토로 남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영토조항에 독도를 기재해 달라는 한국의 요구를 거절한 1951년 8월 미국의 ‘러스크 서한’을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호사카 유지(60) 세종대 교수는 신작 ‘독도, 1500년의 역사’(교보문고)에서 이 주장을 논파한다. 호사카 교수는 ‘러스크 서한’은 미국이 다른 연합국과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미국만의 견해를 담아 대한민국 정부에 비밀리에 전달한 문서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러스크 서한’은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이를 대일강화조약의 결론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또 1947년부터 작성되기 시작한 대일강화조약의 초안들을 검토해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남겨놓으려는 시도를 했고 이에 대해 연합국이 반발했으며, 최종적으로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인지 기록하지 않는 것으로 문구가 결정됐음을 알려준다. 호사카 교수는 “대일강화조약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기록이 없으므로 독도 영유권 문제는 독도를 일본의 통치·행정 범위에서 제외한 1946년 연합국 총사령부 훈령(SCAPIN) 제677호를 계승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대목은 1965년 한일회담에서 독도 문제가 어떻게 처리된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다. 일본은 한일협정에 따라 독도 문제를 양국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은 독도가 양국간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일회담에서는 분쟁 발생시 적용할 문서로 ‘한일 양국 간 분쟁 해결을 위한 교환공문’(이하 교환공문)이 서명됐는데, “양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할 것으로 하고, 이것으로 해결 못 한 경우 양국 정부가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조정에 의해 해결을 도모하기로 한다”로 돼 있다.
호사카 교수는 한일회담 과정에서 독도 문제가 어떻게 논의됐는지 살펴보면서 “일본이 1965년에 사실상 독도를 포기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교환공문에서 ‘분쟁’이란 말에 주목하면서 “한국이 독도를 분쟁 지역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일본이 요구하는 외교 교섭이나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일본으로서는 독도를 되찾아올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나 국제 중재를 통해 독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방법은 교환공문 합의 과정에서 이미 제외된 것이며 한국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일본 출신으로 지난 2003년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교수는 1998년부터 독도 연구에 뛰어들었다. 호사카 교수는 이번 책에서 서기 512년 삼국유사 기록에서 시작해 1500여년에 걸친 한국과 일본의 독도 관련 기록들과 지도들을 검토하면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왜 틀렸는지 치밀하게 논증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日, 독도 영유권 주장 근거 없다” 조목조목 논증
입력 2016-08-17 0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