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김영란法이 놓치고 있는 것들

입력 2016-08-16 18:49

2010년에 ‘문화의 풍경’이라는 책을 내면서 생전 처음 출판기념회라는 걸 가진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삶의 좌표를 모색하는 출사의 자리였다. 그날 손님들에게 뷔페 식사를 대접하면서 인사말을 딱 한마디 했다.

“그동안 밥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앞으로 밥 많이 사겠습니다.” 돌이켜보니 정말 남의 밥을 많이 먹었다. 낮에는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밤에는 허름한 인사동 부산식당에서 생태탕을 먹는 식이다.

스테이크든, 생태탕이든 자꾸 얻어먹다 보니 목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래서 신문사의 차장급이 되고부터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사장과 직원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출판사 사장이나 화랑 대표를 만날 때는 얻어먹고, 편집자나 큐레이터에게는 밥을 샀다. 그렇게 하니 한결 맘이 편했다.

밥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순수하다. 삶의 기본이자 만남의 매개체다. 사람 사이에 밥이 있고, 밥상에는 여러 사람이 둘러앉는다. 거기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밥은 처음부터 공평한 것이어서 산해진미와 가정식 백반이 다르지 않다. 그저 장소와 격식에 따라 비싼 밥, 싼 밥이 있을 뿐이다.

이런 밥이 김영란법에 의해 곡해되고 있다. 강력한 정책으로 부패를 막고 청렴사회를 이루자는 데 무슨 이의를 달겠는가. 그게 시대정신이라면 후유증이 있더라도 관철해야 한다. 선물은 5만원 상한이 아니라 아예 못 받도록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농수산물 소비 위축과 5만원 선물 제한은 다른 이야기이니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 경조사비 10만원 상한제는 길흉사에 관여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그러나 밥은, 식사는 다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함께 밥을 먹는 데서 부정한 거래가 시작된다고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나 밥을 먹는 가장 보편적인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액수를 5만원으로 올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의 밥상을 국가가 들여다보겠다는 생각을 거두라는 것이다.

이러한 무리한 입법은 역사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민주주의는 국가에 대해 사적 자치의 영역을 확대해온 역사의 산물이다. 지난해 논란 끝에 간통죄가 폐지된 것도 아무데나 국가 형벌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을 심리하면서 그런 차원에서 기본권 침해 부분을 살폈어야 했다. 시민사회는 카톡 검열에 반대했듯 밥상의 메뉴를 검열하겠다는 법에도 반대해야 마땅하다.

또 하나 우려할 만한 일은 이 사안에 대한 건전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식인 집단에 큰 침묵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오피니언 리더 대다수가 500만명 그룹에 포함되다 보니 자기주장에 조심스럽다. 정당한 주장인데도 자칫 부패집단 옹호자로 낙인찍히면 포퓰리즘의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가진 자, 힘 있는 자에 대한 일반의 반감을 안다. 이 법을 지지하는 다수의 시선은 500만명을 부정할 소지가 다분한 갑의 지위로 파악한다. 그동안 이들 집단에서 이뤄진 수많은 비리를 보면 진절머리가 날 만도 하다.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밥 한 끼를 둘러싸고 펼쳐질 감시사회의 가공할 만한 부작용이다.

밥은 좀 편하게 먹자. 식사는 자율과 자치가 이뤄지는 기초 단위이자 보호받아야 할 사적인 영역이다. 밥상에서 눈치 보는 일, 식당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개인의 자기검열은 강할수록 좋지만, 국가의 개입은 작을수록 좋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