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재학·졸업생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온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은 정부 대학 구조개혁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평생단과대 사업은 학령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성인 평생학습 수요를 대학으로 끌어들여 충격을 완화해 보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유학생 유치 활동 강화와 함께 ‘대학교육 수요 창출’이란 명분이 깔려 있었다.
이화여대 측의 경찰력 투입 요청 등 ‘갈등관리 능력부재’나 일방적인 사업 추진 등이 사태를 증폭시켰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구조개혁을 밀어붙이는 교육부와 개혁 피로감을 호소하는 대학사회의 충돌이 격화돼 나타났다. 이화여대 사태를 계기로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과 재정지원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갈등이 이제 시작 단계라는 점이다. 교육부는 모든 대학을 A∼E등급으로 구분하는 ‘대학 구조개혁 평가’를 통해 1주기(2014∼2016년) 4만명, 2주기(2017∼2019년) 5만명, 3주기(2020∼2022년) 7만명 등 총 16만명의 정원을 줄인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갈등은 점차 첨예해질 전망이지만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개점휴업’ 상태다.
돈 없다는 대학, 평가 받으라는 정부
대학들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세계 일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재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주 수입원인 등록금은 수년째 동결돼 있다는 논리다. 앞으로도 등록금 인상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 제재와 학내외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학령인구 감소로 등록금 재원은 급격히 줄고 있다.
교육부도 등록금 규제를 풀어주긴 어렵다. ‘반값 등록금’ 정책 때문에 대학이 등록금을 올리면 국가장학금 지원 규모를 늘리든가, 아니면 박근혜정부가 자랑하는 ‘반값’이란 타이틀을 포기해야 한다.
교육부는 과거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했을 때 벌어졌던 일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 등록금은 매년 가파르게 올랐다. 이 돈은 국립대에서 교수 복지에 상당수 투입됐고, 사립대는 10조원 규모의 적립금을 쌓았다.
교육부는 등록금 인상 대신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돈을 받으라고 대학에 요구하고 있다. BK21플러스 사업에 2725억원, 대학·전문대특성화 사업(CK·SCK)에 2460억원, 사회수요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프라임)에 2012억원 등 올해만 1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이 돈은 대학이 정부 정책을 수용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대학들은 불만이다. 등록금을 묶어 재정 압박에 시달리게 해놓고 재정지원 사업으로 줄을 세운다는 것이다.
대학 자율 주장의 ‘함정’
일부 대학들은 고등교육교부금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한다. 초·중등 분야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처럼 내국세의 일정 부분을 떼어 자동적으로 대학에 지원하라는 얘기다. 예산 당국은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 교육 재정이 매년 증가하는 상황을 마뜩찮아한다. 예산 당국이 이런 요구를 받아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학들은 ‘대학구조개혁평가’가 한창이던 지난해 국민 세금으로 사립대 교수의 월급을 주는 ‘준공영제’ 주장을 펴기도 했다. ‘기부입학’처럼 국민 정서상 허용되기 어려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곳도 있다.
서울권 일부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도 시장에 맡겨놓으라고 주장한다. 없어질 대학은 시장이 알아서 없애줄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교육부는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고등교육 생태계가 붕괴한다고 우려한다.
꽉 막힌 대학 변화, 정치권은 개점휴업
변해야 생존할 수 있지만 대학은 앞뒤로 꽉 막혀 있다. 세계적 대학과 경쟁하도록 규제를 풀라는 주장도 외면하기 어렵다. 교육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대학 구조조정 실패로 고등교육이 붕괴되면 비난을 한몸에 받게 되기에 물러서기 어렵다. 대학들의 피로감이 한계에 달해 대학사회와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것도 부담이다. 그렇다고 대학에 예산을 퍼주기도 쉽지 않다. 고졸자에게 세금 걷어 대졸자에게 쓴다는 반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재정 압박을 풀어주면서 대학 자율성도 높이는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권은 뒷짐만 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으로 고등교육 예산을 끌어올리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국회의원들은 대학 구조조정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내 지역구 대학이 손해를 보면 곤란하다”는 지역구 이기주의에 매몰돼 있어 되레 원활한 구조조정의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가 제출한 대학 구조조정 관련 법안들은 지난 국회에서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서도 새누리당 김선동 의원이 정부가 평가를 통해 부실 대학을 정리하는 대학구조조정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글=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개혁해야 지원” “돈으로 줄세워”… 갈등, 시작일 뿐
입력 2016-08-15 18:21 수정 2016-08-15 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