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 얘기 좀 해요-문화계 팩트체크] 영화 ‘덕혜옹주’ 역사왜곡 논란의 진실은?

입력 2016-08-17 04:38
영화 ‘덕혜옹주’에서 주연배우 손예진이 일본 군수공장의 조선인근로자들에게 연설하는 장면.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으로 일제에 억압받는 조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주기 위해 가상으로 설정한 대목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이덕혜(1912∼1989)의 삶을 그린 영화 ‘덕혜옹주’가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광복절 연휴를 맞아 이 영화에 대한 관람 열기 못지않게 역사왜곡 논란도 뜨거웠습니다.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망명을 시도했다는 것 등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영화 내용은 사실일까요 허구일까요.

A : 영화가 시작되기 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이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으니 감안하고 관람하라는 얘기죠. 영화는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를 김현정 시나리오 작가와 허진호 감독이 각색해서 만들었습니다. 허 감독은 “역사왜곡을 우려하며 고심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일본에 끌려간 덕혜옹주가 독립운동단체의 도움을 받아 오빠인 영친왕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시도하는 장면입니다. 기록에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기에 사실 여부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김 작가는 “덕혜옹주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녀의 삶을 온전히 복원하긴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김 작가는 이 대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덕혜의 어릴 시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덕혜는 일본에 끌려가기 전까지 고종과 백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에 실리고, 그가 했던 머리핀이 유행하고, 그가 작곡한 ‘쥐’라는 동요가 널리 불릴 만큼 인기가 좋았다는군요. 지금의 ‘아이돌 스타’였다는 것이죠.

어릴 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이미 일본인화 되어버린 영친왕보다는 덕혜가 왕실을 대표하는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겁니다. 영친왕은 일본의 이왕가관리정책에 순응했으며, 일본이 제공하는 풍족한 생활을 즐겼다고 합니다. 반면 덕혜는 일본의 정책에 끊임없이 반발하고 일본인화 되기를 거부했다는군요. 그럴수록 일본은 더 그녀에게 고통을 가했던 것이죠.

일본은 일개 옹주에 불과한 덕혜를 왜 괴롭힌 걸까요. 덕혜는 겁 많고 소극적인 소녀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김 작가의 생각입니다. 이왕가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고, 그것은 적극적인 저항의 행위였으며, 일제에 대한 위협이었다는 거죠.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망명까지 시도하는 영화 속 덕혜의 캐릭터는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는 설명입니다.

덕혜옹주가 일본 군수공장의 조선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실제와 다르다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김 작가는 “덕혜가 친일연설에 동원된 영친왕을 따라 군수공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이왕가에 대한 조선노동자들의 원망과 증오를 목격하게 됐다”며 “덕혜의 연설장면은 왕족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깨닫게 되는 각성의 순간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 정혼한 사이였던 김장한(박해일)이 일본 장교가 돼 덕혜옹주를 보살피는 내용, 이우 왕자(고수)가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는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설정은 사실일까요. 김 작가는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미한 부분”이라며 “영화를 보면서 ‘이런 부분은 극화시켰구나’하고 이해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덕혜옹주 역을 맡은 손예진도 같은 입장입니다. “큰 맥락에서는 덕혜옹주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나라를 빼앗긴 비극의 시대에 한 여인이 나라의 운명처럼 정말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갔다는 것, 한번쯤 기억하고 같이 아파했으면 좋겠어요.” ‘덕혜옹주’가 역사왜곡의 논란을 딛고 팩션(팩트+픽션) 영화의 명품이 될지 두고 볼 일입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