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왕서방’에게 무릎 꿇은 글로벌 1위 기업들
입력 2016-08-16 04:26
“왔노라 보았노라. 하지만 정복하지 못하였노라.”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패기 넘치게 중국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국 만리장성을 넘지 못하고 대부분 되돌아가고 있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 전자상거래 시장을 호령하는 이베이, 정보기술(IT) 기업의 선두주자 구글, 창고형 건축자재 대형마트인 홈데포는 전 세계 시장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중국에서는 아니었다. 중국 토종 기업에 무릎을 꿇은 마지막 결정적 사례는 세계 최대 차량호출 서비스 업체인 우버였다.
디디추싱에 백기 든 우버
우버의 중국 진출 초기인 2014년 7월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우버 최고경영자(CEO) 트래비스 칼라닉은 당시 디디다처의 CEO 청웨이에게 회사 지분 40%를 팔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부끄러운 패배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청웨이는 칼라닉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를 갈았을 것이다. 2년이 지난 뒤 지난 1일 우버는 오히려 자사 중국법인 우버차이나를 디디추싱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디디다처는 중국 내 경쟁사였던 콰이디다처와 지난해 2월 합병에 성공, 중국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디디추싱을 탄생시켰다. 우버는 살아남기 위해 연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중국 60개 도시 매주 탑승횟수 4000만회 수준까지 만들었지만 400개 도시에서 매주 1억회 탑승을 제공하는 디디추싱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우버는 중국 내 점유율 확보를 위해 2년간 20억 달러를 쏟아부은 뒤 쓸쓸한 퇴장을 하게 됐다. 디디추싱은 우버차이나와의 합병으로 시장점유율 93%에 기업가치 350억 달러(약 38조6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독점 차량호출 서비스 업체가 됐다. 그나마 우버는 디디추싱의 지분 20%를 확보해 체면치레는 할 수 있게 됐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 현지화 실패?
미국 언론에서는 우버의 중국 철수에 대해 볼멘소리가 나온다. 늘 그렇듯 국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우버차이나와 디디추싱의 계약 발표 시점은 중국 정부의 차량공유 서비스 합법화 정책 발표가 나온 직후다. 중국 정부는 차량공유 서비스 운영 시 비용 이하 가격으로 운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11월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던 차량호출 서비스가 합법 속으로 들어왔지만 우버로서는 더 이상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보조금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디디추싱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이 만들어졌다.
디디추싱은 차량공유가 합법이 아닌 상황에서도 상하이시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지원을 받았다. 반면 우버는 디디추싱의 주요 투자자인 텅쉰의 메신저 앱 위챗 계정이 반복적으로 폐쇄돼 사업에 큰 차질을 빚었다.
남 탓만 해서는 안 된다는 자성론도 고개를 든다. 중국인들의 마음을 읽는 현지화 전략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우버는 중국에 진출하면서 구글 지도를 사용했다. 구글 자체가 중국에서 막혀 있는 탓에 서비스가 원활하지 못했다. 우버가 현지 업체 바이두 지도로 바꾼 것은 2014년 12월이었다. 디디추싱이 위챗을 이용한 간편결제를 도입한 것과 달리 우버는 복잡한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을 고집한 것도 경쟁에서 밀린 요인이다.
미국 다국적 기업의 중국 잔혹사
과거 중국에 진출했다 쓴맛을 톡톡히 본 미국 기업들의 실패 사례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또 다른 실패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①홈데포: 중국을 제대로 알았나?
홈데포는 2006년 중국 업체를 인수하면서 12개의 매장으로 중국 사업을 공식 시작했다. 하지만 6년 뒤인 2012년 끝까지 남아 있던 7개의 점포를 폐쇄하면서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홈데포는 재료를 사다가 소비자가 직접 완성하는 ‘DIY(do it yourself)’ 방식으로 가구와 조명 등 인테리어 용품과 각종 건축자재를 판매해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여세를 몰아 ‘DIY’라는 미국의 개념을 중국에 주입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중국 시장의 성격을 간과한 것이다. 직접 만드는 대신 기술자를 고용해 만들면 그만이다. 중국 철수 당시 홈데포의 대변인은 “중국은 스스로 만드는 DIY 시장이 아니라 나를 위해 다 만들어 달라는 ‘do-it-for-me’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홈데포는 또 중국에서 집은 주로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지, 애정을 갖고 잘 꾸며 사는 보금자리 개념은 아니라는 것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②마텔: 100달러짜리 바비 청바지를 누가 살까?
마텔은 2009년 3월 상하이 번화가에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 중 하나인 바비 인형 매장을 세웠다. 3000만 달러(약 331억원)를 투자해 지은 6층짜리 화려한 분홍색 건물 안에 바비 인형 매장과 함께 미용실과 레스토랑에 칵테일바와 스파 시설까지 갖췄다. 단순히 인형만이 아니라 미국의 스타일까지 중국 여성들에게 판매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었다는 것은 정확히 2년 뒤 상하이 매장 문을 닫고 나서야 알게 됐다.
마텔은 인형에 집중하는 대신 바비 인형과 연관된 비싼 의류와 음식 등 부가상품에 포커스를 뒀다. 중국 사업 컨설턴트인 헬렌 왕은 “바비는 미국에서는 문화 아이콘일지 몰라도 중국에서는 아니다”면서 “중국 소비자들은 바비 관련 상품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 사람들 대부분은 100달러(약 11만원)가 넘는 ‘바비 청바지’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③이베이: ‘관시’를 소홀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베이는 2004년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이치넷’을 인수해 이베이로 탈바꿈시킨 뒤 중국 시장 장악을 기대했다. 2년 뒤 중국 타오바오가 시장점유율 95%로 이베이를 중국에서 쫓아낼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타오바오는 현금 거래를 허용하면서도 물품 배송이 완료됐을 때 대금 지급이 이뤄지도록 하는 에스크로 시스템을 도입해 거래 신뢰도를 높였다. 반면 이베이는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중국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을 고수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이베이가 중국의 ‘관시’(關係·관계나 인맥) 문화를 소홀히 한 점을 지적하는 주장도 있다. 타오바오상에서 판매자와 소비자는 자체 메신저 서비스를 이용해 수시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중국 소비자는 판매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한다는 것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중국에서 사업은 단순히 사업이 아니라 ‘사교’라는 말이 있다.
④구글: 정부에 맞서지 마라
구글을 단순히 실패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중국 정부의 간섭과 횡포에 자진 철수했기 때문이다.
2006년 ‘Google.cn’으로 중국 사업을 시작한 구글은 검색 엔진만 갖추고 유튜브나 지메일(G-mail) 등은 서비스하지 않았다. 2008년 자동검색 완성 서비스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더니 2009년에는 구글 서버에 해킹이 이뤄진다. 해커들은 회사의 기밀은 물론 사용자 데이터를 샅샅이 뒤졌다. 구글은 정부의 검열 지시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서버를 홍콩으로 옮긴다. 한때 30%였던 구글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3년 3%로 급전직하했다. 현재는 중국 정부의 ‘만리방화벽’에 막혀 구글 서비스 자체에 들어갈 수 없다.
구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난감하긴 하지만 중요하다. 중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무리 맘에 안 드는 나라의 규칙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맞춰주거나 아니면 철수하거나 둘 중 하나다.
중국의 혁신을 배워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중국의 기술 선구자들’이라는 기사에서 “지금 모바일 혁신을 이끄는 것은 중국 IT 기업”이라며 “해외 서비스 베끼기와 정부 보호 덕에 중국 기업이 성공했다는 인식을 버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페이스북 메신저의 미래를 알려면 중국 위챗을 봐야 한다”고 했다.
모바일 메신저 위챗은 2011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9년 출발한 미국의 왓츠앱보다 2년이나 늦다. 하지만 위챗은 모바일 메신저 기능에만 국한하지 않고 QR코드를 통한 명함 교환이나 음식 주문, 은행 서비스와 영화와 공연 예약 그리고 병원 예약까지 생활에 모든 것을 위챗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올 1분기에만 18억 달러(약 1조99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페이스북 메신저는 지난해 3월 모바일 결제 기능을 추가하고 같은 해 12월에는 우버와 손잡고 차량 호출 기능을 메신저 안에 넣었다. 위챗은 이미 2013년 8월과 2014년 1월 각각 도입한 기능이었다.
트위터를 베껴 출발한 시나웨이보는 트위터에 없는 결제시스템을 갖추고 프리미엄 콘텐츠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모바일 사업의 미래를 알고 싶은 기업들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이제 태평양 반대편 중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