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평생 이런 더위 처음… 자식·손주들 못오게 해”

입력 2016-08-14 18:14 수정 2016-08-14 21:12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일부 지역에서 동물 집단폐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북 김천시 한 한우 농가에서 소들이 대형 선풍기에 의존해 여름을 나고 있다. 경북 영천은 이날 38.7도까지 치솟았다. 뉴시스

“이런 더위는 태어나서 처음이시더. 동네 사람들이 마카(모두) 잠을 설쳐서 비실비실 하니더.”

40도를 육박하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경북 경산시 압량면 당리리의 천필연(73) 할머니는 “칠십 평생 이런 지독한 더위는 처음 겪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 할머니는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때문에 “대구에 사는 자식들과 손주들에게는 당분간 오지 말라고 했다”며 “이번 더위는 유독 견디기 힘들다”고 한숨을 몰아쉬었다. 천 할머니는 요즘 매일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마을회관으로 달려간다. 집에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전기요금 때문에 켜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회관에는 더위에 지친 어르신 20여명이 에어컨을 가동시켜 놓고 더위가 도대체 언제쯤 끝날지 걱정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점심과 저녁식사를 해결할 때까지 마을회관을 떠나지 않는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돗자리와 부채 등을 챙겨 마을입구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긴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 자정 가까운 시각에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예년 같았으면 아침 일찍부터 오전 10시까지 밭에 나가 일을 했었지만 요즘엔 아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치 한증막을 연상하는 무더위 탓에 이곳 주민들은 너나없이 농사일을 잠시 접어두고 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가마솥’ 더위가 이어지는 경북 지역 어르신들은 너도나도 복지회관으로 몰려들고 있다. 경산시 노인종합복지회관은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해 식수 인원이 100명가량 늘어났다.

복지회관 관계자는 “지난해는 점심을 드시는 어르신들이 450명 정도였지만 요즘엔 550명에 이른다”며 “식사를 하지 않는 분들까지 포함하면 하루 이용자가 1000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바둑·장기를 두거나 포켓볼과 당구를 치면서 더위를 이기고 있다.

경산시는 복지회관을 이용하는 어르신이 늘어나자 지난해 하양 지역에 노인복지회관을 개관했고 내년쯤 자인면에도 노인복지회관을 신축할 계획이다.

경북 지역 상당수 교회들도 14일 예배를 통해 “무더위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언제든지 교회 시설에서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 폭염은 다소 누그러지고 있지만 경북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다. 영천은 13일 39.6도로 공식기록 기준으로 올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을 나타낸 데 이어 14일에도 38.7도를 기록했다. 경산시 하양읍은 13일 공식기록은 아니지만 무인 자동기상관측망(AWS) 측정치로 40.3도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최고기온 가운데 최고치인 것은 물론 1942년 8월 1일 대구에서 기록된 우리나라 공식 사상 최고기온인 40도를 넘어선 것이다. 14일에도 40도(39.5도)를 육박했다.

불볕더위에 가축 폐사를 막기 위해 농가들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북 안동시 북후면 물한리에서 삼계탕용 닭 8만여 마리를 키우는 원연철(53)씨는 폭염 피해를 막으려고 330㎡ 안팎인 계사 12채에 종일 선풍기와 환풍기를 가동한다. 계사마다 12대 안팎의 선풍기와 환풍기를 설치했다. 일부 농가에서는 돼지 여물통에 정기적으로 얼음을 깨 넣어주거나 돼지 머리 부분에 차가운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지게 하는 장치를 설치해 체온을 낮추기도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여름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 수는 300만마리가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 8일 기준으로 폐사한 278만6000마리 가운데 닭이 269만128마리로 가장 많고, 오리 7만686마리, 메추리 2만 마리, 돼지 4720마리다.

경산=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