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정부는 국민에게 후했다. 대용량 가전제품을 부담 없이 사라며 세금을 깎아주더니 이젠 돈도 돌려준다. 이에 구매를 망설이던 서민들은 큰맘 먹고 에어컨을 샀다. 업계에선 올해 국내 에어컨 시장이 2013년 이후 최대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엔 이런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에어컨 있으면 부자라는 건 옛말이다. 에어컨을 트는 집이 부자다. 정부 말만 믿고 산 에어컨은 전시용이 됐다.”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을 비난하는 글이다. 정부가 전기요금 폭탄의 주범으로 꼽히는 에어컨을 사라고 부추기더니 정작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폭발하자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침체된 내수를 살리겠다며 자동차, 대용량 가전제품의 개별소비세를 한시 인하했다. 올해 들어 경기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효율 1등급 가전 인센티브 환급’을 통해 에어컨 냉장고 등 구입비의 10%, 최대 20만원을 돌려주고 있다.
이처럼 경기를 살린다며 국민들의 주머니를 빌려 ‘가전제품 판촉’에 매진하던 정부가 정작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전기요금 개편안을 두고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부처마다 입장도 엇갈린다.
산업부는 누진제 최고등급인 6단계에 고소득자가 많다는 이유를 댔다. 여름 전력 사용량을 높이는 에어컨 사용자를 고소득자로 치부하는 셈이다. 반면 기재부는 에어컨을 더 이상 사치재가 아니라 판단했다. 대형 가전제품의 개소세 폐지 이유로 내수 활성화와 달라진 소득 수준을 들었다. 일명 사치세라 불리는 개소세를 에어컨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책도 원칙 없이 쉽게 달라졌다. 산업부는 누진제 완화가 ‘부자감세’로 이어진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 지시로 이틀 만에 한시적 완화 정책을 내놨다.
이처럼 국민들이 폭염과 전기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올여름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 사이에선 ‘에어컨 인심’이 후해졌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세종청사는 지난해까지 여름철 냉방에 인색했다. 지난해까지 청사 사무실 에어컨은 통상 오전 9시 근무 시작 이후에 가동돼 오후 6시면 어김없이 꺼졌으나 올해는 가동시간이 오전 오후 30분씩 늘어났다. 모 경제부처 사무관은 “세종청사에서 4년째 여름을 맞고 있는데 올해처럼 사무실이 쾌적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에어컨 사라 할 땐 언제고…
입력 2016-08-14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