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이사부길 63.’ 건국대 정외과 3학년 한승훈(23)씨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비밀’을 갖고 있다. 한씨의 가족관계부에 적힌 본적(2005년 호주제 폐지 이후 ‘등록기준지’)은 독도다. 독도가 태어난 곳이거나 선대부터 살았던 고향은 아니다.
한씨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1년 2월 ‘그 일’이 시작됐다. 일본인 69명이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한씨는 “일본인이 우리 땅에 어떻게 본적을 옮길 수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무작정 대응할 방법을 찾다가 독도로 본적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다만 미성년자라 부모 동의가 필요했다.
보수적인 아버지는 한사코 반대했다. 한 달이 넘도록 매달리고 설득했다. 한씨 가족은 그해 3월에 본적을 부산에서 독도로 옮겼다. 한씨는 14일 “지금은 아버지가 ‘독도가 제2의 고향인 사람들의 모임’인 독도향우회 간사 활동을 하고 있을 만큼 가족 전체가 독도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울릉도에서 동쪽으로 87.4㎞ 떨어진 화산섬 독도는 우리에게 각별하다.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한씨 가족을 포함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우리 국민 가운데 3263명은 독도가 행정법상으로도 고향(본적)이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서 일하는 박매자(51·여)씨는 오는 10월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난생 처음으로 ‘고향 나들이’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10월 1∼3일 세 딸과 독도를 방문할 계획이다.
박씨도 원래 본적은 독도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도발할 때마다 ‘우리 땅’이라는 걸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화가 났다고 한다. 그러다 2014년 우연히 같은 해에 태어난 이들끼리 만든 친목모임에 가입하면서 길을 찾게 됐다. 모임 회원 가운데 10명가량은 본적이 독도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박씨는 올해 5월 가족회의를 열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막상 세 딸은 반겼다고 한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이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지난 6월 박씨 가족은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순환(53)씨는 행동으로 독도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2008년 사비를 털어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빨간색 티셔츠 200벌을 만들어 주변에 공짜로 나눠줬다.
그해 베이징올림픽을 참관하러 중국으로 가는 국회의원 4명에게 이 티셔츠를 선물했다. 입고 다니면서 독도가 한국 땅임을 널리 알려 달라는 요청이었지만 아무도 입지 않았다.
김씨는 5∼6년 전부터 본적을 옮길까 고민했다고 한다. 말로만 독도사랑을 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난달에 본적 이적을 결행했다. 김씨는 “본적을 옮기고 나니 고향처럼 독도에 대한 애착심이 굉장히 강해졌다”고 했다.
고(故) 이종학 초대 독도박물관장은 1998년 일본 시마네현 의회 회의록을 열람해 7명의 일본인이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사실을 국내에 알렸다. 이 사건은 독도로 본적 옮기기 운동에 불씨를 지폈다. 이어 99년 1월 황백현 초대 독도향우회 회장이 독도로 본적을 이적하면서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었다.
독도를 본적으로 가진 우리 국민은 99년 78명에서 출발해 이젠 3000명을 넘어섰다. 반면 독도에 본적을 둔 일본인은 일본정부 공식기록으로 26명(2005년 기준)이 마지막이다. 외교부는 그 이후로 현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13년 일본인 88명이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일본 신문의 보도도 있었다.
독도로 본적을 옮기는 일은 결심하기까지는 힘들지만, 행정절차는 간단하다. 우선 구청이나 시청에 비치돼 있는 등록기준지 변경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옮기는 본적지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이사부길 5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이사부길 63’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안용복길 3’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보통 주민과 등대원, 경비대원이 거주하는 동쪽 섬인 이사부길 주소를 선호한다. 이어 인감증명서를 떼 등록기준지 변경신고서와 함께 경북 울릉읍사무소(전화 054-790-6619)로 보내면 일주일 안에 처리된다. 비용은 2000∼3000원 정도다.
독도로 본적을 옮기는 일이 의미 있을까. 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실효적 의미는 많지 않다”고 했다. 일본은 1952년 1월부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 국제법에선 그 이후에 생긴 한·일 양국의 영유권 관련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다. 분쟁 상태에 돌입한 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증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본적 옮기기는 국제법상 영유권 인정 증거로 인정받기 어렵다.
다만 상징적인 의미는 상당하다. 호사카 교수는 “더 많은 국민이 독도에 본적을 옮기면 그 국가가 더 독도에 관심이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독도는 나다” 광복 71돌… 3263명, 그들은 왜 본적을 독도로 옮겼나
입력 2016-08-14 17:39 수정 2016-08-14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