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은 숫자일 뿐… 무명의 라켓, 세계를 강타하다

입력 2016-08-15 04:17
푸에르토리코 테니스 대표 모니카 푸이그가 13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여자 단식 결승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라켓을 던진 채 두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테니스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모니카 푸이그가 13일 올림픽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국가를 따라 부르지 못할 정도로 울먹이고 있다. 신화뉴시스
“시 세 푸에데(Si se puede·우린 할 수 있다).”

13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센터를 찾은 푸에르토리코 관중들은 모니카 푸이그(23)가 라켓을 휘두를 때마다 함성을 내뱉었다. 빨간색과 흰색 가로 줄무늬 바탕에 파란색 삼각형과 흰색 별이 새겨진 국기를 테니스 라켓마냥 크게 휘둘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테니스 여자 단식 결승에 나선 푸이그는 안젤리크 케르버(28·독일)를 세트 스코어 2대 1(6-4 4-6 6-1)로 물리쳤다. 서비스 게임을 주고받으며 접전을 펼친 1, 2세트와 달리 3세트는 일방적인 양상으로 흘러갔다. 34위와 2위라는 세계랭킹이 무색했다. 푸이그는 안정적인 리턴과 함께 강력한 백핸드 스트로크를 이어갔다. 승부가 결정된 순간, 코트에 무릎을 꿇은 푸이그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눈물을 흘렸다. 이내 국기를 높이 들고 코트를 가로질렀다. 푸에르토리코 역사에 남을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68년을 기다린 금메달

푸이그는 조국에 첫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푸에르토리코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래 단 한 차례도 금메달을 거머쥐지 못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지지 페르난데스(52)가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1996 애틀랜타올림픽 테니스 여자 복식에서 2연패를 달성했지만 미국으로 귀화한 상태였다.

AP통신을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에서 태어난 푸이그는 어릴 적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주했다. 국가를 외우지 못해 결승 전날 아버지가 이메일로 보낸 가사를 급하게 외웠다.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푸이그는 국가를 부를 수 없었다. 흐르는 눈물 때문이었다. 푸이그는 “가사를 외울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눈물이 멈췄다면 국가를 따라 부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국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푸이그는 “나는 늘 푸에르토리코를 내 뿌리라고 생각한다. 이 메달을 조국에 바치고 싶다”고 했다.

랭킹 34위 무명의 반란

세계랭킹 1위 서리나 윌리엄스(35·미국)가 조기 탈락하며 이변을 예고한 리우올림픽 테니스 여자 단식의 주인공은 푸이그였다. 푸이그는 1988 서울올림픽에서 테니스가 정식 종목으로 재도입된 이후 시드를 배정받지 못한 선수로는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푸이그는 금메달 후보로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푸이그는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대회 결승에 두 번 올라 한 차례 우승한 게 이력의 전부다.

반면 결승에서 맞붙은 케르버는 WTA 투어 대회에서 통산 9번 우승을 차지한 세계 최강자 중 하나다. 올해도 호주오픈 우승, 윔블던 준우승 등 기세를 이어가며 슈테피 그라프(47) 이후 28년 만에 독일에 금메달을 안겨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랭킹은 랭킹일 뿐이었다. 푸이그는 랭킹 19위 아나스타샤 파블류첸코바(25·러시아), 4위 가르비네 무구루자(23·스페인), 14위 페트라 크비토바(26·체코)를 잇따라 물리친 데 이어 케르버까지 격파하며 ‘무명의 반란’을 완성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