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경기와 승부를 즐기는 자만이 웃을 수 있다. 중압감의 포로가 되면 가진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효자 종목인 유도와 여자 핸드볼은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근래 들어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즐기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강도 높은 훈련과 투혼만 앞세워선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지 못한다. 새로운 훈련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3월 28일 경북 포항에 위치한 해병대 교육훈련단 신병1교육대.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선수들이 소집됐다. 이들은 4월 1일까지 4박5일 동안 해병대 신병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 해병대 편에서 출연진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던 ‘송곳 교관’이 대표팀의 훈련을 이끌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진행된 강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차라리 태릉선수촌이 더 편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대표팀 별칭)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해병대 지옥훈련까지 받았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이 올림픽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임영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퓨처 아레나에서 열린 B조 조별리그 4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17대 21로 패했다. 1무3패를 기록한 한국은 남은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여자 핸드볼은 역대 올림픽에서 금 2개(1988·1992), 은 3개(1984·1996·2004), 동 1개(2008)로 총 6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때문에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은 올림픽이 열리면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된다. 당연히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임영철호’는 과거보다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였다.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은퇴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팀들은 체력과 스피드가 더 좋아져 전력 차가 컸다.
임 감독은 지난 6월 23일 리우올림픽 미디어데이에서 “부족한 부분을 팀워크와 성실성 등으로 메운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정신무장만 강조했다. 임 감독의 별명은 ‘독사’다. 혹독한 훈련과 지도 방법으로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성과를 내는 시대는 끝났다. 선수들을 억지로 채찍질하는 걸로는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런 훈련을 받고 경기장에 선 선수는 코칭스태프의 눈치만 살피기 일쑤다.
축구 등 다른 종목의 경우 젊은 선수들은 감독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훈련을 통해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시킨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메달 부담감에 리우올림픽을 즐기지 못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선 활짝 웃는 ‘차세대 우생순’을 보게 될까.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힘 못쓴 ‘효자’들] 즐기지 못한 ‘우생순’… 사상 첫 조별리그 탈락
입력 2016-08-14 18:11 수정 2016-08-14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