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사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중 선언하려던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이 미 정부 내부 반발과 한국과 일본 등 핵심 우방들의 반대로 사실상 선언하기 어려워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보도했다. 점점 증강되는 북한의 핵 위협도 선언을 반대하는 주요 근거가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은 적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중국과 인도는 각각 1964년과 2003년 이를 천명했다. 2009년 취임한 직후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이른바 ‘프라하선언’을 밝혀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말 마지막 작품으로 핵 선제 불사용 선언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열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외교 정책을 관장하는 존 케리 국무장관과 국방 정책을 책임진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핵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부 장관이 일제히 핵 선제 불사용 선언에 반대했다. 케리 장관은 구체적으로 우방인 한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의 반대를 거론했다. 카터 장관은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이 미국의 핵 억제력에 의존해온 나라들의 자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북한과 러시아의 핵 위협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핵 선제 불사용 선언이 자칫 미 대선판을 흔들 수 있다는 점도 반대의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회의에서는 핵무기 현대화 작업을 중단하는 방안이나 러시아와 상관없이 미국 스스로 핵무기 배치 규모를 줄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다른 핵 감축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가 컸다.
당시 회의를 주재한 오바마 대통령은 당장 그 자리에서 어떤 방침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WSJ는 백악관 사정에 밝은 이들을 인용해 이날 회의를 계기로 핵 선제 불사용 방침이 선언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전했다. 그동안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다음 달 개막하는 유엔총회에서 핵 선제 불사용 방침을 밝힐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잇따른 반대는 그만큼 국제안보 현실이 7년 전 프라하선언 당시에 비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WSJ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의 위협이 어느 때보다 커졌고, 북한도 거듭된 핵실험으로 핵 프로그램을 상당히 진전시켜 온 것을 대표적인 안보환경 변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선언으로 ‘얻을 게 없다’는 현실론도 작용했다. 미 싱크탱크인 국립공공정책연구소(NIPP)의 케이스 페인 소장은 “핵 선제 불사용 선언은 핵 억제력을 약화시키고 핵 개발 욕구를 부추기는 반면 선언으로 생기는 이익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핵무기 반대론자들은 “현실적으로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에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없기에 핵 선제 불사용 입장을 밝혀도 손해 볼 게 없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을 거듭 기대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오바마 ‘핵 선제 不사용’ 선언 계획 철회하나
입력 2016-08-14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