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터널, 씁쓸한 현실 일깨우는 ‘영화속 현실’

입력 2016-08-16 04:10
좀비의 확산으로 통제 불능이 되는 상황을 담은 영화 ‘부산행’(위쪽)과 터널 붕괴 사고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그린 ‘터널’의 한 장면. 사고가 날 때마다 인재로 귀결되는 시스템 부재의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NEW·쇼박스 제공

분명 영화 속 이야기인데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반가운 건 아니다. 차라리 씁쓸하다. 최근 개봉한 재난영화들이 그렇다. 사그라지는 생명들 앞에서 무기력한, 혹은 무책임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 ‘터널’(김성훈 감독)은 무너져 내린 터널 속에 매몰된 한 남자의 분투를 그렸다. 일반적인 재난영화 공식에서 벗어나 사고 발생 이후에 집중한다.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부산행’과 그 프리퀄(원작 이전의 얘기를 다룬 일종의 속편)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은 좀비 바이러스가 일파만파 번지는 상황을 설정했다. 좀비라는 설정 자체는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멀쩡하던 사람들이 속수무책 좀비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한심한 현실이 연상된다.

무너진 시스템 속 위태로운 생명

‘터널’의 주인공 정수(하정우)는 평범한 가장이다. 딸 생일 케이크를 사서 차에 싣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아내와 통화하며 터널을 지나는데 갑자기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개통한지 며칠 안 된 터널이 붕괴한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가까스로 119에 신고했더니 쓸 데 없는 질문만 반복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우왕좌왕. 정부는 구체적인 대책 없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공허한 주문만 욀 뿐이다. 현장에 방문한 장관은 취재진 앞에서 포즈 취하는 데 여념이 없다. 언론은 이런 재난 상황을 단순 이슈 정도로 취급한다.

영화를 본 관객 중 상당수는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연상하게 된다고 말한다. 인재(人災)로 귀결되는 상황들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의도한 설정은 아니라는 게 감독의 변이다. 더욱이 소재원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소설은 2013년에 출간됐다.

김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붕괴된 보편적인 상황을 그리고자 했다”면서도 “(관점에 따라) 그렇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 연관성을 찾게 되는 현실이 더 슬픈 것 같다”고 했다.

재난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

‘부산행’과 ‘서울역’에서도 어딘지 익숙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사태 수습은 영 시원치 않다. 언론에서는 “안심하라”며 사건을 감춘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자 정부는 그제야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며 강제 진압에 나선다.

‘부산행’의 열차 안 사람들은 이기심의 극치를 선보인다. 가까스로 좀비 떼를 뚫고 온 이들에게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 모르니 당장 내 앞에서 사라지라’고 요구한다. 타인이야 어떻게 되든 내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서울역’에서도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상이 그려진다. 노숙자, 비행청소년, 매춘 등 어두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연 감독은 “심야 뉴스에 한 토막씩 나올법한 자잘한 사건들의 총합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감독이 숨겨놓은 진짜 메시지는 따로 있다. 우리 스스로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는 것. 연 감독은 “이 영화의 비관적인 엔딩이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이를 보고 무언가 생각한다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