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고세욱] 이재현 회장이 해야 할 일

입력 2016-08-14 19:01

지난해 12월 초 홍콩에서 열린 ‘2015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 한류 가수들이 총출동해 열기가 뜨거운 MAMA 무대 중간에 박근혜 대통령이 영상으로 축사를 전했다. 민간 음악제에 대통령이 2년 연속 축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기자들 사이에서 “이재현 CJ 회장의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CJ가 급하긴 한 것 같다”는 얘기가 오갔다. “몸이 안 좋아 너무 불쌍하다. 건강 때문에라도 나와야 한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지난달 28일 강원도 평창 CEO 하계포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 이 회장을 두고 한 얘기다. CJ 등 범재계의 성의와 바람이 통한 듯 이 회장은 지난 12일 광복절 특사 대상에 포함됐다.

많은 경제인이 그의 사면을 환영한 것과 달리 네티즌과 일반 시민의 정서는 싸늘하다.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의 네티즌이 많이 찾는 일부 포털에서조차 비난 일색이다. ‘유전무죄’는 기본이고 ‘이제 걸어 다니는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등 이 회장의 지병 상태를 비꼬는 댓글도 부지기수다. “오너가 사면됐으니 국가경제에 이바지했으면 한다”는 덕담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실제 이 회장은 건강이 상당히 좋지 않아 사면에 대한 비판 여론에 CJ 관계자들이 다소 억울할 만하다. 이 회장은 신장이식 수술 후유증에다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CMT)’가 겹치면서 거동이 어렵다. 일부 범법행위를 저지른 그룹 오너가 으레 법정에 휠체어로 등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몸 상태다. 경영 면에서도 그룹은 오너 부재 이후 매출 정체와 잇단 인수·합병(M&A) 실패로 위기감이 높던 차에 이 회장의 복귀가 신사업 추진 등에 도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과 그룹 간 시각차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면 기업인에 대한 불신은 가진 자가 쉽게 풀려난다는 데 대한 분노뿐만 아니라 사면 후 과연 경제에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에 대한 회의가 겹쳐서 나온 부분이 많다. 정부는 재계 총수 사면 이유로 항상 경제 활성화를 내세운다. 해당 기업인은 이에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다짐해 왔다. 모 언론에 따르면 노태우정권 이후 재벌, 정치인 등 권력층 특별사면은 모두 666건(중복자 포함)이고 이 중 경제인이 261건으로 가장 많았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실제 (사면에 따른 경기 활성화) 효과가 있었으면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발전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면에 대한 보은의 대상이 국민이 아닌 대통령이 되곤 하는 모습도 기업인 사면을 곱지 않게 보는 이유다. 사면 기업인들은 경영복귀 후 정권의 관심 분야에 대한 투자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정권 선호 사업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지속성도 의문시되는 경우가 많아 국민 경제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정부가 대기업에 할당하다시피 한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이 대표적이다.

사면에 특히 비판적인 젊은층은 만성적인 양극화와 취업난, 열악한 근로조건에 절망하고 있다. 기업, 특히 국내 재벌들이 이 같은 현실에 일정부분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문화사업이 강점인 CJ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한 일자리 확충이 기존 제조업에 비해 어렵지 않다고 본다. 진정성을 가지고 청년과 소통하고 이들을 끌어준다면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유한한 정권이 아니라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국민·청년의 눈높이에 맞춘 사업 추진 및 발굴에 소매를 걷어붙여야 한다. 청년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CJ CGV 극장이 영화 상영에 앞서 수시로 틀던 창조경제 홍보물이 아니다.

고세욱 산업부 차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