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브라 캐미솔’이라는 옷을 두 개 샀다. 피부에 닿으면 시원하다는 쿨 원단으로 되어 있는 캐미솔에 브래지어가 붙어 있어서 이거 하나만 입으면 따로 속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옷이다. 사정이 있어 에어컨도 틀지 못하고 이번 여름을 지내고 있는 나는, 이런 옷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 더운 날 브래지어와 티셔츠를 같이 입고 있으면 얼마나 더운지 브래지어를 안 해도 되는 남성들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 더위에 우리 집 옆 단지 아파트 공사장에선 매일매일 쿵쾅쿵쾅 아파트 짓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음과 분진 피해로 우리 단지 입주자들은 시공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할 거라는 공문도 엘리베이터 공지사항에 붙어 있던데, 그런 집회나 회의에 한 번도 참여해 보지 않아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는 그 아파트를 지어 이득을 취할 건설시공사와 분양회사보다 낮 최고기온 35도가 넘는 야외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떠오른다. 그 일이 중단되면 당장 오늘 하루치 일당이 없어질 이들. 그리고 ‘당일배송’ ‘총알배송’ 등등의 문구가 적힌 매시 조끼까지 흠뻑 젖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택배기사님들을 볼 때면 브라 캐미솔이라는 옷을 이제 알게 된 내 억울함은 억울함도 아니지 싶은데…. 또 한편으론 아무도 나에게 대놓고 욕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죄 없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있나 싶은 생각까지 드는데 왜일까.
색안경이 끼워진 무거운 안면보호구를 쓰고, 납똥이 튀어도 화상 입지 않도록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절연 앞치마를 하고, 등 뒤로 땀이 육수처럼 줄줄 흘러 푸른 작업복이 젖어 검게 보이던, 용접실에서 땜질을 하던 우리 오빠가 생각났기 때문인 것 같다. 브레이크 타임이 되어 쉴 때면 검은 작업복 등에 하얗게 서린 ‘소금꽃’을 내가 봤기 때문이다. 공장 작업실은 아무리 에어컨이 켜져 있다 해도 너무 넓고, 소음과 분진 때문에 문을 열어 두어야 해서 이런 폭염엔 40도가 넘는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유형진(시인), 삽화=전진이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브라 캐미숄과 작업복의 소금꽃
입력 2016-08-14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