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규엽 기자의 굿모닝 리우!] 남북 선수들 사이좋은데… 北 고위층은 ‘심드렁’

입력 2016-08-13 00:22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한승훈 코치와 북한 대표팀 코치, 북한의 강은주, 장혜진(왼쪽부터)이 1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훈련을 하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승훈 코치 제공
모규엽 기자
11일 오후(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장혜진(29·LH)은 오전에 처음으로 남북 맞대결을 펼친 것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리우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북한 강은주(21)를 16강전에서 꺾은 직후 직접 만나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남북 선수들이 그렇게 서먹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살갑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경기 때는 긴장돼서 이야기를 안 하지만 평소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장혜진은 전날 연습 때 일화를 소개해줬습니다. 연습 도중 북한 선수단과 즐겁게 얘기를 나누다 한승훈 코치가 함께 단체사진을 찍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답니다. 처음엔 난색을 표하던 북한 코치가 응하더라는 겁니다. 다만 강은주는 “저는 못 봅니다”라며 카메라를 보지 않고 찍겠다고 했다네요.

이 말을 듣고 잽싸게 한 코치에게 달려가 사진을 받았답니다. 진짜 모두 환하게 웃는 모습이더군요.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과녁의 화살을 뽑는 강은주의 옆얼굴에서도 수줍은 미소가 엿보입니다. 그 옆에서 우리 대표팀 양창훈 감독도 거들었습니다. 그는 “북한 선수들을 4년 동안 (경기장에서) 줄기차게 봤다. 서로 외면하고 그런 것 없다”고 하더군요. 다만 이틀 전 기계체조에서 남북 선수가 함께 사진을 찍은 게 화제가 된 이후부터 갑자기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양 감독은 “아마 윗선에서 남한 선수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온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리우에선 남북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허물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사격 금메달리스트 진종오(37)도 기자회견에서 동메달을 딴 북한 신예 김성국(31)에게 “앞으로 형 보면 친한 척해라”고 농담을 했지요.

결국 ‘윗선’이 문제입니다. 북한 정권의 실세로 리우에 왔던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장에서 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단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역도 금메달 후보 엄윤철이 은메달에 그치자 북한 경호원들은 남한 기자들을 더 거칠게 떼어놓기도 했습니다. 최 부위원장은 역도 감독을 크게 질책하기도 했답니다.

장혜진 취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에서 온 자유아시아방송(RFA) 기자와 우연히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더군요. 삼성은 리우올림픽조직위와의 후원 계약에 따라 올림픽에 참가한 전체 선수들에게 최신 스마트폰을 한 대씩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윤성범 북한 선수단장이 선수들에게 지급된 이 스마트폰을 나눠주지 않고 본인이 쓰거나 다른 북한 간부들에게 돌렸다는 겁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따르면 며칠 전 북한 선수 스마트폰 31개를 윤 단장이 직접 수령해 갔습니다. 이 스마트폰은 뒷면에 파란색 오륜기가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현재 북한 선수들 중에선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윤 단장이 가지고 있는 겁니다. RFA 기자는 “윤 단장이 너무 야박하다. 사실을 기사화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더군요.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