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 잔치는 시작됐다

입력 2016-08-13 00:13
한국 여자양궁 국가대표 장혜진이 11일(현지시간) 2016 리우올림픽 개인전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2012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위로 밀려 출전하지 못했던 장혜진은 4년 만에 개인·단체전을 석권, 여자양궁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자양궁 개인전 금메달 시상대에 오른 ‘짱콩’(짱과 땅콩의 합성어) 장혜진(29)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뒤늦게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는 기쁨이기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게 자신을 붙잡아준 그 무엇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 그녀는 사선(射線)에 설 때마다 머릿속으로 되뇐다. 10초 안에 화살을 쏴야 하는 규정시간 동안 장혜진의 마음은 평화롭다. 그리고 과감하게 발사한다. 팽팽하게 입술까지 당겨진 화살은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아버지는 늘 “한발 한발 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라”고 하셨다. 작은 키의 동안, 고운 피부의 장혜진은 그렇게 궁사의 인생을 살아왔다.

11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 경기장. 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장혜진은 독일 리사 운루흐(28)를 물리쳤다. 그리고 조용히 흐느꼈다. 절치부심했던 지난 4년의 세월, 대회 전 금메달 예상 후보로서가 아니라 ‘다크호스’ 정도로만 여겨졌던 세월이 스쳤기 때문이다.

장혜진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대표팀과 동행했지만 주전 3명에게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올림픽 본선보다 어렵다는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위로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밤낮으로 양궁장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소속팀 LH 양궁단의 경기나 훈련이 없으면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꽃다운 20대 청춘이 그렇게 흘러갔지만 장혜진 곁에는 성경이 있었다. 하나님 말씀 속에서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일, 이루지 못한 꿈과 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일, 삶의 모든 일을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일! 그게 그녀의 유일한 취미였다. 세계대회보다 더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그렇게 통과했다. 지친 마음도, 지친 정신도 하나님 앞에 서면 다 치유받을 수 있었다.

지난 8일 끝난 단체전에서 장혜진은 항상 선발주자로 나섰다. 맏언니였고, 누구보다 첫 발사의 부담감을 이겨낼 자신이 있어서였다. 대표팀은 3등인 장혜진을 통해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한 뒤 2등 기보배(28), 1등 최미선(20)이 고득점을 따내는 전략이었다. 승리의 공이 전부 후발주자에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초석(礎石)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장 4절) 그녀가 리우데자네이루로 떠나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이처럼 강인했지만 상대 선수를 배려하는 데는 누구보다 먼저였다. 개인전 16강전에서 자신에게 진 북한의 강은주(21)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한 사람도 장혜진이었다. 딱딱하게 굳어 기념사진을 같이 찍자는 제의마저 뿌리친 강은주에게 “우리 다음에 만나면 더 친하게 지내자”고 인사한 이도 장혜진이었다.

장혜진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만년 대표팀 후보이기만 할 것 같던 ‘4등 선수’의 뒤늦은 여왕 대관식이었다. 어떤 시인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읊었다. 서른을 눈앞에 둔 장혜진은 거꾸로다. 이제 진짜 잔치가 시작됐다.



김철오 기자, 리우데자네이루=모규엽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