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에 빠진 우리 사회를 시각적 표현… 이용백 개인전 ‘낯선 산책’

입력 2016-08-14 18:58
‘낯선 산책’(2016년작). 알루미늄, 유리, 모터 콘트롤러. 대나무 화분 주위에 설치된 거울이 움직이도록 돼 있는 설치 작품이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여기가 전시장이 아니었다면 누군들 작품이라고 생각할까. 거울로 된 가림막 안에 대나무 화분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다. 아주 평범하게. 그래서 거울에 비친 흐트러진 머리 모양이나 매만지며 대나무의 녹색이 주는 휴식의 기분에 젖어 있던 순간, 움찔 놀라고 만다. 거울이, 거울이 움직인다. 좌우로, 상하로. 움직이는 거울은 평범함을 가장한 채 잠복해 있다가 기습하듯 일상의 평정을 흔들어놓는 괴물 같은 존재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총체적 정책 부실일수도,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비정규직 청년을 불귀의 객으로 만든 하청 시스템일수도, 혹은 유치원 통학 차량에서 아이가 죽어가는 안전불감증일 수도 있다.

이용백 작가의 신작 설치 작품 ‘낯선 산책’은 이렇듯 재난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1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비정상적 사건 사고가 넘쳐나는데 우리 주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모습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그 느낌을 울렁증이 일어나는 움직이는 거울 속을 걸으며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개인전 ‘낯선 산책’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 작가는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이후 베이징(2011), 라이프치히(2014) 등 외국에서만 활동해와 국내 개인전은 8년 만이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는 이례적으로 전체 작품이 매진돼 화제를 모았다.

이 작가는 전쟁과 평화, 역사의 폭력성 등에 관심을 보여 왔다. 겉으로 보면 꽃무더기인데, 어느 순간 꽃으로 위장한 매복 군인이 움직이는 영상에 덜컥 놀라게 되는 ‘엔젤-솔저’, 갑자기 펑 소리가 나며 거울 속에 깨진 거울 파면이 터지는 영상이 나타나는 ‘브로큰 미러(깨진 거울)’가 대표적이다.

‘지루하고 흔해 빠진 소재를 작업하는 이유’라는 다소 문학적인 제목을 단 작품은 알루미늄으로 만든 맹금류의 거대한 날개 한 짝을 기중기에 매단 것이다. 또한 날개를 닮은 스텔스 폭격기 형상을 오려서 깔아놓았다. 평화의 상징인 날개는 단단한 알루미늄으로, 전쟁의 아이콘인 스텔스는 스폰지처럼 부드러운 흡음제 소재로 제작돼 대구를 이루는 듯하다.

작가는 “작가들이 날개라는 주제를 되풀이하며 작업하는 것은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를 비꼬고 싶었다”고 말했다. 네이버 지도에 공백으로 표시되는 남과 북의 경계 부문, 즉 관념적 구조물을 조각화한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은 과거부터 매달려온 전쟁과 평화에 대한 고민의 발로다. 9월25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