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제2수장고 공개 행사에 가보니… 철문·유리문 지나 맞춤형 수납장 속에 의궤가 한권씩

입력 2016-08-14 18:55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가 일반에 공개된 지난 10일, 서준 학예연구사가 조선왕실의궤를 보관하기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한 의궤장을 꺼내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의궤는 크고 무거워 서랍 위에 한 권씩 보관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보존처리하기 전의 호갑(왼쪽)과 처리 후의 호갑. 습기를 서서히 주입한 뒤 자석을 활용해 세운다. 본 모습을 찾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고궁박물관 18곳 전체 수장고에 딱 하나 뿐인 밀폐장입니다. 화재에도, 물난리에도 끄떡없습니다.”

유물과학과 서준 학예연구사가 특이하게 생긴 수납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외부 공기를 완전차단하는 이 수납고엔 2006년 일본에서 환수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74책이 모셔져 있다.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의 수장고와 관련 유물을 보존·복원 처리하는 보존과학실의 굳게 잠긴 문이 열렸다. 지난 10일 인터넷을 통해 선착순 모집한 10명에게 한정 공개하는 행사에 동행했다.

문화재는 예민하다. ‘제한구역’이라고 표시된 수장고 안은 으스스했다. 정육점 같은 붉은 기운이 도는 조명때문이다. 문화재 탈색방지용이란다. 육중한 철문을 여니 또 유리문이 있다. 이중문은 안팎의 온도와 습도 차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수장고는 고궁박물관과 인접 경복궁 일대 지하에 산재해 있다. 이날 공개된 곳은 회화, 병풍, 의궤, 실록이 보관된 제2수장고다. 유물은 재질별로 다르게 보관한다. 병풍은 직물로 감싸고 면 끈으로 철제 판에 묶어 세워서 보관한다. 일반 전적(책)은 갑에 넣은 뒤 다시 오동나무 상자 안에 보관한다. 수납장도 해충에 강한 오동나무다. 보풀이 나지 않도록 일반 종이가 아니라 한지를 쓰는데, 이것도 산성이나 알칼리성을 뺀 중성지다.

시스템 수납…유물이 안 보인다

항온, 항습, 자동 화재 탐지 및 소화 설비를 갖춘 206㎡(62평) 수장 공간에서 관람객이 본 건 유물이 아니었다. 유물을 집약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세련된 수납시스템을 둘러보는 기분이었다.

서 연구사가 유리가 달린 슬라이딩 도어를 밀고 서랍을 당기니 그제야 유물이 보인다. ‘철인왕후부묘도감의궤’(철종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책). 올 초 보물로 지정된 일본 궁내청 반환 조선왕실의궤 133권을 보관하기 위해 짠 맞춤형 의궤장이다. 두께가 5∼6㎝나 되고 무거워 겹쳐 보관하면 마찰로 손상이 될 것을 우려해 이렇게 한 권 한 권을 별도로 보관한다.

회화, 가리개, 병풍 등 대부분의 유물은 이동식 서가처럼 생긴 모빌랙 안에 숨어 있다. 태그 시스템을 사용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출입문에는 ‘자동 리더기’가 위쪽에 설치돼 유물의 유출입이 자동기록된다.

보존과학? 약품보다는 물리적 처리가 먼저

과학실험실 같은 보존과학실에서 얼른 눈에 띄는 것은 벽에 부착된 여러 개의 청색 연통이다. 김호윤 학예연구사는 “아세톤 등 용제를 사용한 뒤 독성을 빨아 배출하는 후드”라면서 “그러나 보존 처리에서는 가급적 물리적인 방법을 먼저 쓰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가죽 처리 담당 보존처리 연구사가 마스크를 낀 채 찌그러진 가죽 가방을 붓으로 솔질하는게 눈에 띈다. 어보(왕의 인장)를 담아두었던 호갑이다. 딱딱하게 굳은채 찌그러진 호갑은 서서히 습기를 투여해 펴는데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린다. 금속팀에서는 어보의 녹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것도 붓과 면봉이다. 김 연구사는 “물을 사용해 지우다 안되면 알콜을 쓰고 그래도 안될 경우 아세톤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관람자 중에는 관련 분야 종사자도 있었다. “녹 제거 때 사용하는 약품은 뭐냐” “깨진 도자기를 붙일 때 접착제는 뭘 쓰느냐” 같은 질문도 나왔다. 박혜림(평택 효명고)양은 “학예사가 꿈인데 오늘 와서 보니 더 그 일이 하고 싶어졌다”며 싱글거렸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