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밤 2016 리우올림픽 여자 핸드볼 B조 예선 3차전이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퓨처 아레나. 한국 대표팀 ‘큰언니’ 오영란(44·인천시청)과 네덜란드 슈터 로이스 아빙이 서로를 마주하고 섰다. 경기 종료와 함께 네덜란드에 ‘7m 스로’를 허용한 상황이었다. 32-32로 동점인 가운데 아빙의 슛이 들어가면 한국은 패배와 동시에 사실상 예선 탈락이었다. 몇몇 선수들 눈에는 절망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오영란은 몸을 던져 막아냈다. 아빙의 강력한 슛이 배에 꽂혔지만 아픔은 잠시였다. 8강 진출의 꿈을 계속 꿀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날 한국이 기록한 무승부는 무승부 이상의 값진 결과였다. 앞서 러시아와 스웨덴에 2연패하며 벼랑 끝에 몰렸던 한국은 오영란의 선방으로 실낱같은 8강 진출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
올해로 만 44세인 오영란은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전체를 통틀어 최고령자다. 이번이 벌써 개인 5번째 올림픽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으나 8년 만에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11살, 7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돌아왔지만 실력은 전성기 시절 그대로였다. 오히려 책임감이 더 강해졌다.
“한국 핸드볼이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잖아요.” 경기 후 그가 남긴 말에서 한국 핸드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사실 오영란도 대표팀 복귀 결정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도움이 될까’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 그를 임영철 감독이 붙잡았다. 임 감독은 일찌감치 오영란을 머릿속에 두고 있었다. 24년 만에 올림픽 정상에 도전하는 대표팀에겐 베테랑이 필요했다. 앞선 4번의 올림픽에서 은2·동1개를 획득한 오영란의 경험이 필요했다. 더구나 지도자를 해야 할 나이에도 여전히 리그 최고 골키퍼로 꼽히는 오영란은 적임자였다. 오영란은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것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한국은 결선 진출을 위해 남은 프랑스, 아르헨티나전 모두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 프랑스는 세계랭킹 9위의 강호로 네덜란드와 전력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르헨티나는 조 최약체로 평가되고 있다.
오영란은 “오늘 이겼어야 했지만 비긴 것만으로도 희망”이라며 “남은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를 잡고 토너먼트에 올라가겠다”고 강조했다. 오영란은 이날을 위해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는지도 모른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한국 핸드볼을 위기서 구한 마흔 네살 ‘큰언니’
입력 2016-08-11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