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나를 일으켜준 아버지, 이 메달을 바칩니다”

입력 2016-08-12 04:39
김정환이 1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개인 사브르 동메달 결정전에서 모이타바 아베디니(이란)에게 승리한 뒤 두 팔을 들고 포효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김정환이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뒤 밝게 웃는 모습.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김정환(33·국민체육진흥공단)은 경기 초반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칼끝은 매섭게 상대 선수의 몸을 향했다. 마스크 찌르기, 팔목 치고 빠지기…. 재기발랄한 공격으로 내리 6점을 따내며 승리를 확신했다. 그는 마지막 15번째 득점과 함께 동메달이 확정되자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며 두 손을 번쩍 든 채 포효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올림픽 개인전 메달을 바치는 순간이었다.

김정환은 1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모이타바 아베디니(이란)를 15대 8로 누르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펜싱 사상 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나온 첫 메달이다. 김정환의 올림픽 개인전 첫 메달이기도 하다.

그 무엇보다도 값진 동메달이었다. 올해 나이 33세인 김정환은 한국 펜싱 대표팀 맏형이다. 마지막 올림픽에서 김정환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하지만 리우올림픽 초반 후배들의 부진은 그의 어깨를 더 무겁게 했다.

김정환은 준결승에서 아론 칠라지(헝가리)에게 12대 15로 져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그때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동메달을 품에 안았다.

김정환은 선수생활 중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늘 ‘아버지’를 꼽는다. 김정환은 한때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다. 2005년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으로 1년간 선수 자격이 박탈됐다. 불면증 치료약을 복용한 탓이라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여파로 그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없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다시 검을 쥐게 만든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기나긴 설득 끝에 아들의 마음을 되돌렸다. 김정환은 세계 정상에서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전하리라 다짐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2008년 극심한 부진에 빠져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아버지는 또 4년 뒤 런던올림픽을 준비하자며 아들을 다독였다. 항상 아들의 편에서 힘이 되어주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뒤 아버지는 아들의 올림픽 경기를 보기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김정환은 더 이를 악물고 운동에 매진했다. 2012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부활을 알렸다. 그해 런던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은 김정환은 사브르 단체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검증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사브르 개인전 32강에서 탈락해 전체 19위에 그쳤다.

김정환은 또 다시 4년 동안 운동에 매달렸다. 결국 베테랑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개인전 메달을 아버지께 선물했다. 김정환은 동메달을 확정한 뒤 “지금 이 모습을 봤으면 나보다 더 좋아하셨을 아버지가 생각난다. 경기가 끝난 뒤 하늘을 봤을 때 아버지가 나를 보고 계시다고 굳게 믿었다. 나를 위해서는 별이라도 따다줄 기세로 도와주셨던 분”이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마지막 올림픽에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바람대로 메달을 걸고 크게 웃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