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시화비율이 80%를 넘어선 시점은 2000년도로 미국의 2005년보다도 오히려 5년이나 앞서 이루어졌다. 1960년대 국가 주도로 추진된 강력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농촌인구의 도시로의 유입이 매우 급속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를 수용하기 위하여 도시는 팽창하고 또 팽창되었다.
하지만 도시의 양적 성장과 달리 질적인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도시공간의 열악한 환경과 도시 건축물의 취약성에 대한 여러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도시건축물은 지은 지 30년 정도 지나면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건축물의 짧은 생애주기로 인한 자원의 심각한 낭비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0세기 말에서 금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도시건축의 화두는 단연 ‘지속가능한 개발’ ‘스마트 성장’ ‘뉴어버니즘(New Urbanism)’ 등이라고 할 수 있다.
1972년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바버라 월터 여사가 현대건축에 있어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이후 지속가능한 개발은 도시계획의 필수적 과제가 되고 이는 93년 뉴어버니즘 운동을 태동시키고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스마트 성장으로 이어져서 21세기 도시건축의 맥락을 주도하고 있다.
‘도심공동화(都心空同化)’란 도심의 지가 급등 등이 원인이 되어서 도시 외곽으로 인구가 이동함에 따라서 도시 중심지역이 텅 비게 되어 도시가 황폐해지고 슬럼화 되는 현상을 말한다.
도심공동화로 인한 이웃나라 일본의 폐해가 심각하다. 일본 전체 주택 6063만 채 중 13.5%에 해당하는 820만 채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전국의 빈집 숫자는 100만 채에 이른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 교인 수의 감소로 인하여 수 백 년 된 성당을 비롯하여 많은 성당들이 문을 닫고 카페 등으로 전환되어 사용되고 있음도 많이 목격된다. 미국에서도 교인이 줄기는 마찬가지여서 많은 교회가 문을 닫거나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양 사람이 밤 비행기를 타고 서울의 시가를 내려다봤는데 십자가가 너무 많아 거대한 공동묘지가 아닌가 싶은 인상을 받았다는 희화적인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많은 것은 우리 그리스도 교인으로서는 칭찬받고 자랑스러운 일이지 그것이 비난받거나 희화화 될 사안은 아니다. 다만 신앙적 영성을 느낄 수 있는 교회가 많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개신교회의 쇠퇴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났다. 아직도 쇠퇴는 지속되고 있으며 더 이상 반등할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향후 교인이 더 줄어들면 문을 닫는 교회가 생겨날 수 있다.
교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팔려는 교회가 나오고 팔려고 내놓지만 구매자가 없어 팔리지 않는 상황이 속출할 수 있다. 도시 곳곳에 빈 교회가 생겨나고 일부에서부터 교회공동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도심공동화와 마찬가지로 교회공동화도 교회 뿐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도 활력을 떨어뜨려서 교회 주변지역이 황폐해지고 슬럼화 될 개연성이 있다.
1937년 프랑스 남부에 지어진 프랑스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교회’는 파리에서 4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야 도착하는 조그만 마을에 있는 작은 교회지만 세계적인 명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보기 위하여 일부러 찾아간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일본 교회 ‘물의 교회’와 ‘빛의 교회’도 또한 그러하다.
우리나라에는 수만 명 교인을 자랑하며 위압적이기까지 한 초대형 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을 스스로 찾아가서 위로받고 고달픈 영혼을 달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작더라도 잘 지어진 교회가 좋은 교회다. ‘롱샹교회’나 ‘빛의 교회’처럼 잘 지어진 교회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간다. 이는 한국교회 이정표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개신교인의 미션이기도 하다.
박승배<교회건축전문가·뉴어프로치건설㈜ 대표이사>
[박승배의 불편한 교회건축 이야기] 교회, 공동화 되기 전에…
입력 2016-08-12 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