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연관해 내 기억에 깊이 새겨진 세 장면이다. 여기에서 받은 인상이 강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첫째는 독일에서 유학하던 1992년쯤 일이다. 유학하며 목회도 했는데 한번은 어느 집사님댁에 갔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집사님 딸이 수영장에 간다며 집에서 나가는데 엄마가 묻는다. “너 돈은 가진 거 있어?” “응, 엄마, 1마르크 있어. 물 사먹으면 돼.” 유로화 통합 전이어서 독일 돈은 마르크였고 1마르크가 500원 정도였다. 딸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독일 젊은이들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 비하면 진짜 돈을 적게 쓴다.
두 번째 장면. 내가 목회하는 한인교회가 도르트문트 아이힐링호펜에 있는 독일 교회당을 빌려 쓰고 있었다. 독일 목사들과 이런저런 일로 만날 일이 생겼다. 어느 날 독일 교회 담임목사 사택에 갔다. 응접실에 잠시 있었는데 그 목사님이 전화를 하고서 옆에 있는 메모지에 뭘 적는다. 무얼 적느냐고 물었다. 목사님의 대답이 금방 한 전화는 사적인 통화라서 시간과 내용을 적어놓고 그에 해당하는 금액은 개인적으로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문화의 차이를 절감했다.
세 번째 장면은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지 1∼2년 지난 때였을 텐데, 1997년 정도로 기억된다. 언론에 독일의 고위 공직자 몇 사람이 옷을 벗었다는 소식이 났다. 공적인 출장에서 적립된 항공 마일리지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이 이유였다. 유학하면서 독일의 힘이 무엇인지 여러 분야에서 경험했지만 다시 한 번 그 힘이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과 연관해 의견도 많고 토론도 심하다. 시행은 기정사실인데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주장이 있다. ‘격식 있는 식사’를 하려면 1인당 접대비용 상한액인 3만원으로는 안 된다며 5만원 정도로 올려야 한다는 얘기부터 농수산물에 대한 적용은 유예하거나 예외를 둬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대해 엄격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아닌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곧 시행될 김영란법과 연관해 최선을 다해서 불분명한 점을 정리하고 공적인 기준들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큰 틀에서 이 법을 시행하고 그로써 우리 사회가 걸어갈 방향을 확신하는 일이다. 디테일을 논하다가 그 방향이 비틀려서는 안 된다.
예컨대 식사 접대의 상한선 3만원이 시행된다면 고급 한정식 집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란 게 늘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서 3만원이 넘지 않는 메뉴를 취급하는 음식 시장은 확대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식사 문화가 소박하게 변화되는 데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많은 전문가의 예측처럼 조금만 길게 보면 이 법의 시행이 가져오는 경제의 축소는 시장 구조의 풍선효과 때문에 그리 크지 않을 것이고, 누구나 동의하는 것처럼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경제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세계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선 것을 흔히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이와 비교하며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지난 몇 년 어간에 여러 언론에 독일을 배우자는 기획 기사가 많이 나왔다. 독일의 진짜 저력은 그들의 정신세계와 문화적 사고방식에 있다. 그중 핵심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다. 김영란법의 과감한 시행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려 있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지형은] 독일의 세 장면과 김영란법
입력 2016-08-11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