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이탈리아를 걸으며 역사를 만나고 싶다면…

입력 2016-08-11 17:39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 보티첼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열화당 제공
18세기 조선시대 지식인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보리)를 읽으며 2007년의 여름을 행복하게 보낸 기억이 있다. 상·중·하 3권의 꽤 두꺼운 책이었지만, 서늘한 감동에 젖어 더운 줄도 몰랐다.

당시 중국 사행(使行)은 지식인의 최대 로망이었다. 지적 호기심에 충만한 박지원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붓과 벼루, 종이를 필참하고 이국의 풍광과 선진문물을 기록하고 해석했다. 이후 기회가 돼 열하일기 답사도 떠났으니 그렇게 나를 흔들어 놓았던 책이다.

김영석 전 이탈리아 대사가 쓴 이 책은 실용여행서나 힐링을 내세운 에세이식 여행서가 판치는 출판시장에서 인문적 갈증을 해소해줄 고품격 여행서다. 이탈리아에 대한 최고급 안내서라 할 이 책을 들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나타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본 이탈리아는 껍데기였다며.

책에 수록된 서평에서 문학평론가 최원식씨는 이 책을 조선시대 사행을 떠난 공직자의 여행기인 ‘열하일기’에 비유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외국에 나간 외교관은 하늘에 별처럼 많겠건만 연행록과 해유록에 빛나는 전통은 가뭇없다”며 책에 비치는 옛 사신의 풍모에 반가워했다.

“이 세상은 한 권의 책, 여행하지 않은 이는 책을 한 페이지만 읽은 셈이다.” 저자는 고대 로마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후 펼쳐 보이는 내용은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의 강을 수영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탈리아에서 살며 이들 문화유산과 문화를 살펴보되, 고립된 개별적 대상으로서보다는 역사적 맥락이나 시공간적 연관성 속에서 보려는 노력을 잊지 않았다.”

프롤로그에서 밝힌 저자의 고백대로 곳곳에서 통찰이 빛난다. 고대의 제국적 배경과 중세의 지방분권적 뿌리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현재의 산업과 문화를 진단한다. 이탈리아의 DNA가 된 제국주의적 습관을 뚫어보며 민족국가 형성이 오히려 장애가 된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 “베네치아는 천년의 역사동안 어떤 외세로부터도 자유로운 독립공화국이었다”며 베네치아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갈파한다.

묵직한 인문학만 있는 게 아니다. 피렌체는 어디서 가장 아름다운 조망을 얻을 수 있는지 등 실용 여행서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귀한 팁도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여행의 태도다. 여행은 공부라는 것이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사전 공부를 할 것을 강조하면서 찾아갈 장소에 대한 단편적 지식보다는 역사와 문화의 큰 맥락 속에서 정보를 갈무리할 것을 주문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