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입양 아이 앞에서 양육 상황 묻는 공무원… 입양수당 가정 방문 조사 논란

입력 2016-08-11 04:10

올해 4세가 된 입양아를 키우는 A씨는 지난 6월 구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양육수당을 받는 입양가정에 대한 방문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언제가 괜찮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전례가 없었지만 일회성 조사라고 생각한 A씨는 아이와 함께 공무원을 맞았다.

하지만 방문조사가 일회성이 아니라 아이가 16세가 될 때까지 매년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A씨는 아이를 ‘비밀입양’(주위에 입양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입양)한 경우다. 지금은 아이가 어려 괜찮지만 구청에서 매년 찾게 되면 아이나 주변에 입양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

A씨는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입양을 비밀로 할 예정이었지만 매년 방문조사를 하면 내 뜻과 무관하게 아이가 알 수 있어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월 각 지방자치단체에 내려 보낸 ‘입양가정 방문조사 지침’이 입양가정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끝에 철회된 사실이 10일 뒤늦게 확인됐다. 입양가정의 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양육수당을 신청한 입양가정에 대해 1년에 2회 이상 가정조사(1회는 반드시 가정방문)를 실시해 양육 여부를 파악하도록 각 지자체에 지침을 내려 보냈다. 2014년 발생한 해외 입양아 김현수군 사망사건과 관련해 국내 입양가정에 대한 양육 실태를 점검한다는 차원이었다.

양육 실태를 점검한다는 정부 취지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침은 시행 초기부터 반발을 불러왔다. 비밀입양 가정이 여전히 많은 국내 현실에서 일괄적으로 방문조사를 실시할 경우 가족 의사와 무관하게 입양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실제 입양가정 모임 등에 따르면 지방에서는 공무원이 가정을 방문했다가 가족을 만나지 못하자 ‘포스트잇’을 붙여 방문 사실을 알리는가 하면 이웃에 해당 가정에 대한 내용을 묻고 다닌 경우도 있었다. 지자체별 조사 내용과 형식도 제각각이었다.

공개입양 가정 역시 피해를 입긴 매한가지다. 한 가족이 됐지만 입양 부모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감시하는 것 같아 큰 상처를 입었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를 공개 입양한 B씨는 방문조사를 거부한 뒤 아이를 달래느라 한동안 힘들었다. B씨는 “아이 입장에선 국가가 하겠다는 것을 엄마가 반대하니 혼란스러웠던 거 같다. 아이가 ‘경찰이 와서 우리 잡아가면 어떻게 해’라고 하는데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정부는 입양가정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지난달 28일 각 지자체에 지침을 보내 방문조사를 결국 철회했다. 복지부 담당자는 “양육실태 파악을 위해 지침을 도입했지만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잘못을 일부 인정했다.

문제가 된 지침은 삭제됐지만 입양가정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입양가정 모임의 관계자는 “범죄사실 조회를 비롯해 엄격한 심사 끝에 입양이 이뤄지는데, 정부는 여전히 입양가정을 친자가정이랑 다르게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가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글=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