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오르한 파묵의 세계를 엿보다

입력 2016-08-11 17:40
오르한 파묵이 자신이 쓴 소설 제목을 따서 터키 이스탄불에 지난 2012년 건립한 ‘순수 박물관’에서 웃고 있다. 파묵은 이번에 국내 번역된 에세이집 ‘다른 색들’에서 ‘순수 박물관’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이스탄불에 설립하고 싶었던 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민음사 제공
오르한 파묵(64)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파묵이 쓴 논픽션으로는 ‘이스탄불’과 ‘소설과 소설가’가 있지만 각각 도시와 소설론을 다룬 글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에세이로는 이번에 나온 ‘다른 색들’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들이 가끔씩 소일거리 하듯 써낸 에세이는 그의 문학을 좀더 쉽게, 그리고 깊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에세이를 읽고 소설로 접근하는 독자들도 있다. 이 책은 파묵의 팬들은 물론 파묵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이 될 듯 하다.

파묵의 이 이세이집은 터키에서 1999년 처음 선보였고, 2006년 개정 출간됐다. 2006년에 파묵은 터키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개정판은 수상에 따른 사람들의 관심에 답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파묵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인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비롯해 몇몇 원고를 추가 수록했다. ‘다른 색들’은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에세이집이라고 하지만 분량은 600페이지가 넘는다. 이 책 한 권이면 남은 여름을 보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수록된 글이 70편에 이른다. 긴 글도 있고 짧은 글도 있다. 묵직한 글도 있고 경쾌한 글도 있다. 터키와 유럽을 논한 글이 있는가 하면, 딸이나 아버지에 대한 글도 있다. ‘내 이름은 빨강’ ‘검은 책’ ‘순수박물관’ 등 그의 작품에 대한 글, 도스토예프스키나 나보코프, 보르헤스 등 그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글도 있다. 그리고 왜 쓰고, 누구를 위해 쓰며, 소설가로 살아가는 일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글이 있다.

파묵의 에세이는 파묵이라는 작가의 다양한 색깔들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는 작가이자 독서가이고,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터키인이면서도 터키의 현대화를 적극 지지하는 서구주의자이자 세계인이기도 하다. 또 사랑스러운 딸 뤼야와 해변을 산책하는 아버지이자, 아버지와 함께 노벨문학상 수상식장에 서고자 열망했던 아들이기도 하다. 각각의 에세이는 파묵이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블록, 하나의 단어처럼 읽힌다. 순서대로 읽어나가도 되고, 마음에 드는 제목이나 주제를 골라 구경하듯 읽어도 좋다.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은 파묵의 문학세계를 꽤나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제 세대가 현대적인 민족 문학을 창안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야심, “터키 문제에 관한 사회 비판을 담은 소설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시도해야 했습니다” 같은 한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프루스트주의 세계를 이슬람의 알레고리, 이야기, 유희와 결합해! 이 모든 것을 이스탄불의 무대에 올려! 그러면 뭐가 될지 한 번 보자고” 식의 작법 등을 이해하게 된다.

금연 272일에 쓴 ‘담배를 끊은 지’나 “어느 날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나의 삶의 송두리째 바뀌었다”로 시작되는 ‘작가의 일상’처럼 곳곳에 생활에 대한 글들이 적지 않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면 아무래도 문학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파묵이 들려주는 문학론은 동시대 어떤 작가들의 얘기보다 치열할 뿐만 아니라 비서구 문학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섬세하게 고심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세계의 변방이자 정치적 종교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터키에서 때론 형사기소를 당하기도 하면서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 자신을 감금”하고 하루 10시간씩 30년에 걸쳐 글을 써왔고 앞으로 30년간 더 글을 쓰기를 소망하는 그의 태도 자체로 문학의 가치를 강렬하게 증언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