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스타-이란 양궁선수 자흐라 네마티] 휠체어 탄 불굴의 名弓…그녀의 도전은 이미 ‘엑스 10’

입력 2016-08-11 04:43
이란 양궁 여자대표팀 자흐라 네마티가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64강 경기에서 휠체어를 탄 채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네마티는 대회 개막식에서 올림픽 최초의 '휠체어 탄 기수'로 입장해 주목을 받았다. AP뉴시스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경기장.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64강전에 나선 자흐라 네마티(31·이란)가 휠체어를 탄 채 등장하자 관중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등장한 네마티는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감동을 감추진 못하는 얼굴이었다. 32강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쏜 화살 한 발 한 발에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했던 네마티는 ‘검은띠’의 태권도 유단자였다. 언젠가는 올림픽에 나가 금빛 발차기를 하리라는 꿈을 가진 당당한 18살 소녀였다.

2003년 12월 26일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 그녀가 사는 도시 밤에는 엄청난 대지진이 몰아닥쳤다. 규모 6.7의 강진은 도시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고, 무려 3만1000여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지진 여파로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목숨을 건진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사고로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됐다. 그렇게 대지진은 올림픽 출전이라는 네마티의 꿈마저 단번에 앗아갔다.

실의에 빠져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며 땀 흘리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는데, 그걸 할 수 없게 됐다. 3년이 지난 2006년 네마티는 우연히 활을 잡게 됐다. 활은 휠체어에 앉아서도 충분히 쏠 수 있었다. 네마티는 타고난 운동신경과 노력으로 금세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였다. 활을 잡은 지 단 6개월이 지났을 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고, 3위에 올라 이란의 장애인 양궁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엔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2012 런던패럴림픽에 출전해 양궁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단체전에서는 동메달을 수확했다. 네마티는 패럴림픽에서 처음으로 조국에 금메달을 안긴 여자 선수가 됐다. 지난해 태국 방콕에서 열린 장애인 양궁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해 리우올림픽 출전 자격까지 얻었다.

네마티는 리우올림픽 개막식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휠체어를 탄 기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란 국기를 든 네마티는 선수단 맨 앞에서 입장했다.

대회 여자 양궁 랭킹라운드에서 49위를 기록한 네마티는 본선 64강에서 인나 스테파노바(러시아)와 맞대결을 펼쳤다. 휠체어를 탄 선수가 올림픽 경기를 치른 건 1996 애틀랜타올림픽 당시 양궁선수였던 파올라 판타토(이탈리아)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1세트를 21-28로 내준 네마티는 28-27로 2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하지만 내리 3, 4세트(26-28 26-27)를 내주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도전도 함께 막을 내렸다. 경기가 끝난 뒤 네마티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의 눈물이었다. 관중들의 박수는 더욱 커졌다. 과녁에 10점짜리 화살을 꽂진 못했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이라는 이름의 ‘엑스 10(X 10·10점 중에서 가장 가운데에 꽂힌 화살)’을 쐈기 때문이다.

네마티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마티는 올림픽이 끝난 뒤 열리는 리우패럴림픽에서 개인전 2연패에 도전한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동시에 출전한 선수는 전 세계에서 네마티뿐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