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들러리 사면심사위

입력 2016-08-10 19:07

최근 몇 년 사이 단행된 특별사면 중 가장 특별한 것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단독 사면이다. 이 회장 단 1명만을 위한 특사는 이명박정부 때인 2009년 12월 이뤄졌다. 이 이례적 안건을 놓고 당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에서도 외부위원의 지적이 있었다. 이에 법무부는 과거 전례가 있었다며 KAL기 폭파범 김현희 단독 사면(90년 4월)을 들었다. 이런 지적 외에 특사 자체에 대한 반대는 없었다. 외부위원 1명이 신중 검토 의견을 냈을 뿐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국익을 최우선 고려하자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제안은 곧 ‘결론’이 됐다.

법무부 소속으로 사면심사위가 도입된 건 2008년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심사위는 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은 위원장인 법무부 장관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현재 심사위는 장관 등 법무부·검찰 내부위원 4명과 외부위원 5명으로 돼 있지만 장관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런 심사·의결 구조에서는 정부 뜻이 그대로 관철될 수밖에 없다.

초읽기에 들어간 이번 8·15특사의 심사과정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지난해 9월부터 공석이었던 외부위원 2명을 8일에서야 부랴부랴 위촉한 뒤 9일 심사위 회의를 열어 특사 대상자를 심사·의결했다. 이 안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12일 국무회의에서 확정·공포된다. 이 같은 진행 상황을 볼 때 형식적 심의, 거수기 심사위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특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이를 견제하려고 심사위를 설치했다면 그에 걸맞게 공정성과 독립성을 갖춘 구조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와대 하명 명단을 기계적으로 추인하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법무부 소속 심사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변경하고, 위원은 국회와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각 3명을 포함해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사에 뒷말이 없으려면 제도적 개선책부터 마련해야 할 터이다. 글=박정태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