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전기료 폭탄’에 떠는데… “그래도 싸다”는 정부

입력 2016-08-10 00:39

“요금 폭탄은 과장이다.” “누진제 완화는 부자감세다.”

9일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기요금 누진제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여전히 원가 이하인 데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부담이 적고, 누진제를 없애면 전력 사용이 늘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였다. 누진제를 비판하는 논리와는 정반대다. 현실은 어떨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두 딸을 키우는 주부 유경숙(41)씨는 요즘 두 딸과 쇼핑몰·카페를 헤매고 있다. 유씨는 “아이들이 덥다고 짜증을 내 어쩔 수 없다”며 “지난달 전기요금 폭탄을 맞은 뒤 에어컨 켜는 게 두려워 택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 직장인 김모씨도 무섭게 돌아가는 전기 계량기에 떨고 있다. 휴가 때 아이들과 집에 있으며 에어컨을 틀었더니 하루 만에 50㎾나 돌아갔다. 김씨는 전기요금 걱정에 벌써부터 마음이 편치 않다.

‘전기요금 폭탄’ ‘징벌적 요금제’ 같은 원성이 터져나오더니 급기야 한국전력을 상대로 ‘부당한’ 전기요금을 돌려달라는 집단소송에 5500여명이 참여했다.

누구 주장이 맞을까. 채 실장은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4시간 정도만 쓰면 여름철에도 전기요금이 10만원 정도 더 나오는 수준이고, 가장 높은 6단계 요금이 적용되는 가정은 4%뿐이라고 설명했다. 벽걸이형 에어컨의 경우 하루 8시간, 스탠드형은 4시간만 사용하면 그렇다는데, 성남시 주부 유씨는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는데 하루에 4시간만 에어컨을 사용하라는 말을 누가 공감하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간단히 계산해봐도 정부 설명은 현실감이 없다. 도시 4인 가구가 봄·가을 월 평균 342㎾h를 사용한다면 4단계(300∼400㎾h) 구간에서 월 5만3000원만 낸다. 이 가구가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3일부터 12일까지 열흘간 하루 8시간씩 스탠드형(1.84㎾h) 에어컨을 틀면 147.2㎾h를 더 쓰게 된다. 8월 전기 사용량은 489.2㎾h가 돼 요금은 12만원이 된다.

공장과 사무실, 상점은 놔두고 왜 가정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느냐는 비판에 정부는 “주택용은 지금도 원가를 못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공장 앞까지만 전선을 끌어주면 되는 산업용에 비해 가정용은 전국 구석구석까지 배선을 해야 해 돈이 더 든다는 논리다. 주택의 60%는 원가 이하 구간인 4단계(월 400㎾ 이하) 내에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제가 되는 여름철 냉방비는 쏙 뺀 계산이다.

채 실장은 “누진제를 개편하면 전기를 적게 쓰는 사람에게 더 많은 요금을 걷고 전력 소비가 많은 사람의 요금은 깎아주게 된다”며 형평론을 내세웠지만 어떻게 개선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국 가정의 전기요금 부담이 월 8만∼9만원(일본)인 선진국보다 적다고 하지만 한국 가정의 전력사용량 자체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26위다.

정치권에서도 누진제 개선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누진제 개선 태스크포스에 참여한 홍익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전의 원가 관련 로데이터(원자료)를 면밀히 분석해 가정용뿐 아니라 전기요금 체계 전반을 고치려 한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6단계인 가정용 요금 체계를 4단계로 조정하는 방향의 누진제 개편을 추진 중이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