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뉴 스트럭처 그리고 릴리프’전 권오상 “세계적 조각가 칼더 오마주·비틀기로 작품 구상”

입력 2016-08-10 19:31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 ‘뉴스트럭처’ 시리즈 앞에 선 권오상 작가. 아래 사진은 칼더의 일명 ‘빨간 치즈’ 조각. 아라리오갤러리·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갤러리 출입문을 열더니, 그가 말했다. “저 조각 보이지요? 이번 전시, 저기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은 길 건너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옥상에 설치된 ‘빨간 치즈’ 조각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 3장을 지지시켜 만든 구조물이 치즈를 연상시키는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작품 ‘무제’다.

권오상(42) 작가의 신작전 ‘뉴 스트럭처 그리고 릴리프’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아라리오갤러리를 8일 찾았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사진 조각’을 과감히 버렸다. 사진을 오려붙여 입체처럼 만든 ‘사진 조각’은 브론즈, 대리석 등을 사용하는 육중한 전통 조각의 권위에 반기를 들기 위해 종이를 소재로 ‘가벼운 조각’을 시도한 것이다.

트레이드 마크가 자신을 옥죌 갑옷이 될 수 있는 시점에 이를 벗어던지는 용기는 ‘칼더에 대한 오마주’ 혹은 ‘칼더 비틀기’로 표출됐다. 전시장 1층에는 구글에서 검색한 치즈 이미지를 입힌 합판 3장을 이용한, 가장 단순한 구조물 ‘치즈’가 있다. 딱 봐도 옥상 위 칼더의 ‘치즈 조각’이 생각난다. 그러면서도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가 갖는 친밀성, 합판이라는 소재가 갖는 가벼움으로, 철제 모더니즘 추상 조각의 아우라를 전복시킨다.

“칼더의 조각에 기존의 ‘플랫’(평면 사진 작업) 시리즈에 사용했던 대중적인 이미지를 입히면 새로운 추상 조각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시도하게 됐어요.”

플랫 시리즈는 영국 디자인전문지 월 페이퍼에 나오는 가구, 의자, 시계 등 이 시대 젊은 사람들이 ‘득템’하고 싶은 이미지를 오려내고, 이를 구조물처럼 줄지어 세운 뒤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이번 시리즈는 마치 그 사진 속에서 평면처럼 잠자던 종이 구조물이 괴물처럼 커져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다. 오크 술통, 술잔, 앵무새 마크, 자동차 휠, 운전석 손잡이…. 그 구조물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대중매체가 쏟아내는 이미지의 왕국 속을 사는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 각각의 구조물의 숫자, 판들이 지지하는 방식은 모두 칼더의 기존 작품에서 따왔다.

역시 월 페이퍼에서 딴 이미지를 인쇄한 합판을 임의로 덧대고 포갠 릴리프 시리즈도 새로운 시도다. 대리석 같은 평면에 인물 등을 도드라지게 조각하는 고대 조각 양식인 릴리프(부조)를 차용한 것이다.

전통적인 조각을 현대적으로 풀어가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그다. 일관성을 지키면서 안주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뚝심의 작가다. 21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