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 앞. 검은색 모자와 하얀색 와이셔츠, 노란색 넥타이를 맨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소속 120여명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 비리와 대한항공 탈세 의혹, 철저히 수사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조종사노조가 회사가 아닌 외부기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건 처음이다. 이들은 왜 조종대 대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 걸까.
표면적인 이유는 임금인상 문제다. 조종사노조는 지난해 12월부터 조종사의 잇단 퇴직 등 근무환경 변화를 이유로 임금 37%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평균임금은 1억4000만원인데 약 5000만원을 더 올려 달라는 주장이다. 반면 회사는 어려운 경영여건으로 1.9% 이상의 인상은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무직 등이 주축이 된 일반노조의 경우 지난해 12월 1.9% 인상으로 임금협상을 매듭지었다.
다소 무리해 보이는 임금인상 요구 이면에는 ‘앙금’도 엿보인다. 노조 측은 회사의 부당한 인사조치도 거론하고 있다. 조종사노조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조종사노조에 속한 조합원 다수를 올해 기장 승진 대상에서 누락시켰고, 지난 6월 임금인상 촉구 집회에 참석한 일부 조합원은 최근 교관직에서 면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규남 조종사노조위원장이 지난 1일부로 기장에서 부기장으로 강등된 일도 있었다. 이 위원장은 지난 4월 사전 브리핑 시간을 고의로 늘려 비행기 출발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강등 조치됐다.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사정이 어렵다고 하면서 정작 오너 일가는 부를 쌓고 조종사들을 탄압하고 있다”며 당국의 세무조사도 요구했다.
하지만 조종사노조의 주장에 일반노조가 비판하는 등 ‘노-노 갈등’ 조짐도 보여 사태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종사노조 집행부는 회사가 어려움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봉을 5000만원이나 올려 받기 위해 회사를 터무니없이 음해하고 있다”며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비즈카페] 피켓 들고 처음 거리로 나온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입력 2016-08-10 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