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펜싱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메달 6개(금2 은1 동3)를 수확하며 효자종목으로 거듭났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도 ‘히트’를 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대회 3일차까지 메달권에 진입하리라 예상됐던 종목에서 우리 선수들은 줄줄이 중도탈락했다. 펜싱 강국 반열에 올랐던 한국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전력 노출이다.
한국 펜싱은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대회 여자 에페 개인전을 시작으로 메달 사냥에 나섰다. 런던대회에서 ‘1초 오심’으로 눈물을 흘렸던 신아람(30·계룡시청)이 32강에서 무너졌다. 최인정(26·계룡시청) 강영미(31·광주서구청)도 같은 종목에서 고배를 삼켰다. 남자펜싱의 희망으로 불렸던 허준(28·광주시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허준은 7일 플뢰레 개인전 32강에서 청카롱(홍콩)에게 8대 15로 져 탈락했다.
8일에는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빛 찌르기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4년 전 한국 여자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디펜딩 챔피언’ 김지연(28·익산시청)이 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지연마저 16강에서 로레타 굴로타(이탈리아)에게 역전패 당하고 말았다. 같은 종목에 출전한 서지연(23·안산시청)과 황선아(27·익산시청)는 32강에서 주저앉았다.
한국은 런던에서 발펜싱이라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펜싱으로 올림픽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 선수들은 유럽 등 서양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다. 키는 작고 팔다리가 짧다. 한국 펜싱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빠른 스텝이었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발 더 빨리 움직여 상대의 공격 성공률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상대가 공격에 실패한 틈을 타 재빨리 역습을 시도해 점수를 쌓곤 했다.
발펜싱의 한계는 이미 올림픽 시작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각국 선수들은 4년 사이 숱한 국제대회를 치르면서 한국의 발펜싱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또 선수층이 얇은 한국 주요 선수들의 습성 하나하나가 노출됐다.
한국은 이를 대비해 발펜싱뿐 아니라 펜싱 본연의 손기술이 가미된 ‘손펜싱’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최신가요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댄싱 트레이닝’을 실시했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변칙 동작들로 신장의 열세를 뛰어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어린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손펜싱을 배운 서양 선수들을 공략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대회 초반 부진했지만 아직 경기가 모두 끝난 건 아니다. 10일 대회 남자 사브르에 출전하는 구본길(27)과 김정환(33·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개인전 메달에 도전한다. 두 선수는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언급돼 왔다. 또 전희숙(32·서울시청)과 남현희(35·성남시청)는 여자 플뢰레에서 한국 펜싱의 명예회복에 나선다.
단체전 역시 기대해볼 만하다. 11일 여자 에페 단체전을 시작으로 여자 사브르 단체전(13일), 남자 에페 단체전(14일)에 우리 선수들이 차례로 출격한다. 한국은 런던대회 남녀 단체전에서 총 3개의 메달(금1 은1 동1)을 수확했다. 잠자는 시간만 빼고 동고동락하며 훈련을 소화한 한국 선수들의 끈끈한 조직력이 빛을 발할 차례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런던서 잘 나간 펜싱, 리우선 ‘금 찌르기’ 고전
입력 2016-08-09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