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정영식(24)은 포핸드로 거세게 몰아붙이는 세계 탁구 1인자 마룽(28·중국)에 맞서 1세트 승리를 따냈다. 이어 2세트 역전승까지 거두자 드디어 ‘탁구 황제’ 마룽을 꺾는 것 아니냐는 기대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마룽은 힘과 스피드를 앞세워 반격했다. 정영식은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정영식은 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파빌리온3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 16강전에서 중국의 마룽에게 세트점수 2대4(11-6 12-10 5-11 1-11 11-13 11-13)로 역전패했다. 정영식은 먼저 1, 2 세트를 이기며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3, 4세트에서 내리 지며 반격을 허용했다. 5, 6세트에서는 1점차 듀스로 접전을 벌이며 승리의 불씨를 살리려 들었지만 결국 패배했다. 이철승 코치의 위로에도 정영식은 눈물을 쏟았다. 탁구 여신 현정화는 해설방송에서 “정말 잘 싸웠다. 내가 다 마음이 아프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정영식은 명실상부한 국내 일인자다. 전국체전과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전, 전국남여종합탁구선수권 등에서 여러 번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18살이던 2010년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복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까지 세계대회에서 단식 정상에 오른 바는 없었다. 그래서 ‘국내용’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강력한 드라이브나 선제공격보다 지구전과 랠리에 능한 온건한 스타일에 대한 지적이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탈락했을 때는 최악의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반복된 훈련과 연습으로 정영식은 자신의 능력을 세계에 증명했다. 지난해 6월 필리핀오픈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호주오픈에서 생에 첫 세계대회 단식 1위에 올라섰다. 세계랭킹은 30위권에서 20위권으로 상승했고 리우올림픽 직전에는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랭킹 12위를 기록했다. 단기간에 급성장한 것이다.
정영식은 애초부터 이번 대회 목표로 마룽을 겨냥했다. 올림픽 첫 출전에서 세계랭킹 1위를 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회 한 달 전부터 마룽의 주특기인 포핸드와 파워풀한 중진 드라이브에 대비하고자 수차례 비디오 분석을 돌려봤다. 자신의 강점이자 마룽의 약점인 백핸드 공격을 연마했다. 마룽은 경기 후 “정영석의 기량이 뛰어났다. 적잖은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괜찮아…괜찮아…] 세계 1위에 거침없는 스매싱 빛났다
입력 2016-08-10 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