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선녀도 악성도 반한 절경, 충북 영동 한천팡경

입력 2016-08-10 20:02
충북 영동군 황간면 한천팔경 가운데 으뜸인 월류봉과 능선 끝자락 바위 위에 올라앉은 월류정이 초강천의 시원한 물줄기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풀어놓고 있다.
옥계폭포를 배경으로 카메라에 추억을 담는 여행객
금강 옆 절벽의 강선대와 강에서 물놀이를 하는 가족
송호국민관광단지 소나무숲으로 캠핑온 가족들(사진 위)과 시와 그림이 새겨진 전통옹기로 꾸며진 황간역 광장.
충북 영동은 한천팔경과 양산팔경을 자랑하는 고장이다. 선조들이 풍류를 즐기던 수려한 경치다. 특히 달(月)과 관련된 곳이 많다. 한천팔경의 으뜸인 ‘달의 놀이터’ 월류봉(月留峯)과 시원하게 물줄기를 드리우는 옥계폭포를 품은 월이산이 있다. 여기에 달밤에 황홀한 풍경을 내놓는 ‘양산팔경의 대표 주자’ 강선대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달의 놀이터’ 월류봉

월류봉은 ‘달도 머물다 간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황간면 원촌리 마을 앞을 지나는 초강천 옆에 키가 비슷한 여섯 개의 깎아지른 듯한 암봉이 어깨를 견주며 차례로 서 있다. 높이는 400.7m에 불과하지만 고산준봉에 못지않은 기세를 내뿜는다.

초강천으로 급하게 내리꽂힌 능선 끝자락 바위 위에는 작은 정자 월류정이 앉아 있다. 산과 강과 정자가 어우러져 구도 잘 잡힌 명품 수채화를 풀어놓는다. 월류봉을 돌아나온 초강천은 금강과 합수해 충북 옥천으로 흘러간다.

월류봉 풍경은 역시나 달이 떠야 제멋이다. 대지를 뜨겁게 달군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내놓은 자리에 달이 슬그머니 등장한다. 달은 산봉우리 사이사이를 숨바꼭질 하듯 드나들며 뒹굴뒹굴 굴러다닌다. 달빛 가득 들어찬 월류봉에서는 시가 저절로 읊어진다.

조선 후기 노론의 거두 우암 송시열이 한 눈에 반한 절경이다. 그는 32세에 이곳에 은거하며 월류봉 옆에 작은 서재를 짓고 달빛 아래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43세까지 11년을 달을 친구삼아 머물렀다. 그가 죽은 뒤 영동 일대 제자들이 그가 살던 집터에 그를 기리는 한천서원을 지었다.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진 곳에 한천정사가 들어섰다. 월류봉 일대 여덟 경승지가 이곳 이름을 따서 한천팔경이라 불린다.

달은 왜 이 봉우리에서 머물다 갈까. 월류봉 정상에 올라보면 달이 놀러 오는 이유가 보인다. 달이 꼭꼭 숨겨 놓은 볼거리는 한반도를 빼닮은 그림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원촌마을 반대편 에넥스 황간 공장 옆에 있다. 편도 30여분 거리지만 경사가 급해 만만히 볼 일은 아니다.



달 떠오르는 월이산과 옥계폭포

영동과 옥천의 경계 옥계면에 솟은 월이산은 ‘달이 떠오르는 산’이다. 산의 남쪽 끝에 옥계폭포가 있다. 영동 출신의 악성(樂聖) 난계 박연이 사랑한 폭포다. 조선 세종 때 악기를 개량하고 음계를 조정했으며 궁중 음악을 정비하고 우리나라 고유 음악의 토대를 튼튼히 한 음악가다. 고구려 왕산악, 가야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이라 불린다. 폭포 앞에서 피리를 연주하다가 바위틈의 난초에 매료돼 ‘난계’를 호로 정했다.

약 20m 높이의 절벽에서 장쾌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 물줄기가 수려한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폭포의 물소리와 뿜어져 나오는 세찬 물보라가 시원하다. 선계를 방불케 하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물줄기가 떨어지는 주변 절벽은 마치 음악당 건물처럼 반원형이다. 난계뿐 아니라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혼을 빼놓았을 풍경이다.



‘달밤의 황홀한 풍경’ 강선대

양산면 일대에도 빼어난 여덟 경승지가 있다. 양산팔경이다. 이 가운데 봉곡리에 있는 강선대가 깃든 풍경이 2경이다. 금강을 굽어보는 우뚝한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다. 옛 정자는 없어지고, 1950년대 새로 지어진 정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당시의 운치와 풍류는 여전하다. 아름답기로 따지면 으뜸이라 해도 손색없다.

정자 위에 서면 강물 옆 바위 절벽이 아찔하다. 여기에 늙은 소나무가 가지를 휘휘 늘어뜨리고 있으니 운치가 제법이다. 달 보기에도 그만이다. 달은 밤하늘에도 뜨고, 고요한 강물에도 비친다. 이곳의 가을 달밤 황홀한 풍경이 선대추월(仙臺秋月)이라 불린다. 강선대 아래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던 곳이라 전해질 만큼 물이 맑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강선대와 금강을 한꺼번에 눈에 담으려면 ‘봉곡교’에 서면 된다. 여름 햇살을 받은 금강은 이름 그대로 비단이다. 강물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도 더없이 평화롭다.

금강 건너 보이는 곳이 캠퍼들에게 잘 알려진 송호국민관광단지다. 100년 넘은 1만 그루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캠핑하기 그만이다.



추억의 문화공간, 황간역

황간면 소재지에서 초강천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황간역은 경부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열어 11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간이역이다. 전성기에 비해 퇴락해 지금은 한적한 역이 됐지만,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발길을 끌어모은다.

역 광장에는 고향을 주제로 한 시와 그림이 새겨진 전통옹기가 모여 있고,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리는 땅따먹기, 사방치기 등 전통놀이판이 그려져 있다. 주말이면 시낭송회나 음악회도 열려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에 비치된 노랑자전거는 기차 이용객이라면 한 번쯤 타볼 만하다.


◆ 여행메모


난계국악기체험전수관 등 볼거리

포도축제 25일부터 나흘 간 개최


수도권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옥계폭포를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에서 빠지면 가깝다. 월류봉은 황간나들목이 편하다. 서울에서 영동읍까지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열차를 이용하려면 경부선 열차를 타고 영동역에서 내리면 된다.

영동에는 ‘올뱅이’(올갱이·다슬기의 충북 방언) 해장국을 파는 음식점들이 많다. 금강과 그 지류에서 잡은 것들로 만든단다. 강선대가 있는 양산면 금강변에는 어죽과 민물고기를 동그랗게 돌려 담아 조린 ‘도리뱅뱅이’를 내놓는 식당이 즐비하다. 도리뱅뱅이는 피라미나 빙어를 동그랗게 돌려담아 고추장으로 조린 음식이다.

강선대 인근 ‘송호국민관광지’에서 여름 성수기에 오토캠핑을 하려면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물한계곡은 골 깊고 물 맑은 경승지. 기암괴석과 폭포가 연이어 펼쳐진다. 이밖에 민주지산, 천태산, 영국사, 난계국악기체험전수관, 와인터널 등도 볼 만하다.

올해 12번째를 맞이하는 ‘2016 영동포도축제’가 ‘우리가족 힐링은 영동포도로!’라는 슬로건 아래 오는 25∼28일 영동체육관 등 영동군 곳곳에서 열린다. 포도 따기, 포도 밟기, 와인 족욕, 와인 만들기, 어린이 체험 등 포도를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포도·와인 등 영동 우수 농특산물 시식·판매행사, 과일종합 전시관·와인홍보관 등의 전시행사도 진행된다. 특히 올해는 포도국수, 포도김밥, 와인삼겹살 등 영동군의 특색있는 음식점과 체험장 내 푸드트럭 운영 등 먹거리존이 운영된다(영동군 관광진흥팀 043-740-3221).


영동=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